프랑스령 라오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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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1860년대,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반도]] 진출이 시작되었다. 1864년, 프랑스는 어렵지 않게 [[캄보디아]]를 식민지로 만들고 1884년에는 [[코친차이나]]를 통하여 [[베트남]] 전체를 완전히 식민지로 만들었다. 이제 남은 것은 타이가 지배하고 있던 라오스 영토였다. 당시 라오스는 영토를 타이와 베트남이 나눠가져 나라가 없어진 상태였다. 중국으로 진출해야 하는 프랑스에게 메콩 강은 매우 중요한 통로여서 반드시 필요했지만, [[영국령 인도 제국]], [[영국령 버마]] 등 [[영국]]과의 충돌을 막기 위하여 협약을 맺어 점령하지 않기로 되어 있었다. 1893년, 프랑스 정부는 [[방콕]] 앞바다에 포함과 군사를 정박시키고 타이정부를 협박하였다. 요구는 메콩 강 동쪽 땅을 자신들에게 주라는 것이였다. 라오스 영토의 2분의 1은 베트남을 점령하면서 같이 점령되었고, 메콩 강 동쪽 땅에 프랑스의 꿈이던 인도차이나 제국 건설은 참으로도 프랑스에게는 입맛이 당기는 것이였다. 주지 않으면 식민지로 만들겠다는 프랑스의 협박에 결국 타이 정부는 어쩔 수 없이 메콩 강 동쪽 땅을 [[시암 조약]]으로 프랑스에게 할양하고 말았다. 라오스 전체를 차지한 프랑스는 라오스를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 추가하였다. 이렇게 하여 완전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영토가 되었다. 프랑스는 [[루앙프라방]] 지역, [[비엔티안]] 지역, [[참파삭]] 지역으로 나뉘어 있는 3 지역을 [[루앙프라방 왕국]]이란 허수아비 왕국으로 통합하여 보호령으로 삼고, [[운 캄]]을 왕으로 임명하며 겉으로는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한 지역이자 자치는 인정된 나라의 모양새를 갖췄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프랑스는 라오스가 경제적으로 별 쓸모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현실적으로 메콩강을 따라 중국에 진출한다는 것이 너무 어려운 것에다가 메콩강 유역을 포함해서 농사지을 수 있는 면적이 3%밖에 안되는 라오스에서 별다른 생산물을 기대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랑스는 [[라오숭]]이라는 화전민들이 사는 [[고지대 라오스]]에서 생산되는 [[아편]]에 눈을 도려 아편재배를 크게 권장하여 가장 큰 아편 수입원으로 만들고 아편판매독점권을 소유하여 큰 돈을 벌었다. 더군다나 프랑스는 기대가 되지 않는 라오스에 투자나 교육에는 무관심했다. 교육의 혜택은 왕실과 귀족 등 소수의 상류계층만 누렸고 일반 백성들을 위한 교육기관은 [[불교사찰]]에 지나지 않았다.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 터지자 인도차이나의 운명은 바뀌게 된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의 라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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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라오스의 독립파는 [[라오이싸라]]라는 정당을 만들었다. 라오이싸라는 베트남의 공산정권인 [[베트남 민주 공화국]](DRV)와 유대했다. 1946년 5월, 프랑스가 라오스에 지배자로 다시 돌아오면서 라오이싸라의 지도자들은 대거 [[타이]]와 [[베트남]]으로 도망쳤고 라오스-베트남 국경을 중심으로 게릴라전투가 시작되었다. 프랑스는 베트남공산군에 전력을 집중하기 위하여 라오스를 달래는 정책을 썼다. 그들은 [[방콕]]과 [[하노이]]의 라오이싸라 지도자들에게 추파를 던지고 1949년에는 루앙프라방의 왕을 전체 라오스의 왕으로 승격하였고, 라오스 시민들과 라오스공산파에게 민족정부의 수립도 허용하였으며, 군대, 외교, 재정권만 프랑스가 지니고 라오스의 독립을 선언하였다. 형식적이긴 해도 독립국이 된 라오스에는 지도자들이 속속 돌아왔다. 그리고 라오스의 독립을 이끌어낸 시사방 봉 왕은 라오스의 위대한 왕으로 떠오르게 된다. 그중에는 라오스의 운명을 바꿀 두 왕자이자 라오이싸라 지도자인 [[수바나 푸마]]와 그의 이복동생 [[수파누봉]]이었다. 이 둘은 우익, 좌익으로 갈라져 푸마는 우익, 수파누봉은 좌익 지도자가 되면서 이 둘은 라오스 내전의 원인이 된다. 그리고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프랑스가 베트남에게 대패하면서 [[제네바협정]]에 따라 인도차이나에서 완전철수하고 말았다. 이로써 라오스도 완전한 독립국이 되었다.
[[파일:Sisavang Vong - 1951.jpg|295px|섬네일|default|시사방 봉 왕]]
 
==라오스공산군 게릴라==
라오스는 이웃 베트남을 따라 공산군이 형성되었다. 이 게릴라는 주로 [[라오족]]으로 구성되었는데, 라오족과 전혀 관련이 없는 고산지대 소수민족들의 지지와 협조를 받았다. 이것은 곧 라오족과 소수민족의 독립정신과 외세축출 정신이 라오스인을 묶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1975년 베트남이 공산통일 되면서 라오스도 사실상 공산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