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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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에서는 [[유대교]]의 '[[타나크]]'를 '구약'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382년]]에 로마 공의회에서 새롭게 정한 경전들을 '신약(New Testament)'이라고 부르기로 397년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결정했기 때문이다. 초창기의 기독교는 [[유대교]]의 한 분파로서 역사에 등장하였고, 따라서 '신약성경'으로 분류된 문헌 안에서 언급된 "성경"이라는 모든 표현은 곧 '구약성경'을 의미한다. 그러나 기독교의 경우에는 그리스어 문화권의 [[디아스포라]] 유대인 세력과 이방인들을 중심으로 성장하였고, 따라서 디아스포라 유대인이 신앙을 유지하기 위해 히브리어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하여 사용했던 [[70인역]]이 그대로 기독교의 경전이 되면서 외경논란의 화근이 되었다. 내부적으로 높은 권위를 인정되던 주요 문헌들이 [[70인역]]의 것을 주로 인용하였기에 [[기독교]]의 호교론적 입장에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히브리어 원문과 70인역의 차이에 대한 유대교 측의 비판에 대하여 상당히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문헌 상으로 증명되는 최초의 정리된 기독교 구약 목록은 2세기 후엽의 인물인 사르디스(사데)의 감독인 [[멜리토]]의 편지로서 에우세비우스의 '교회사'에 수록된 것이다. 좁은 성경 목록이라고 부르는 유대교 구약 성경 목록에 가깝지만, [[에스더]]가 빠져있고 2경전에 해당하는 솔로몬의 [[지혜서]]가 들어가 있다는 차이점이 주목할만 하다. 이는 유대교 타나크가 초대 기독교에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았거나, 타나크 자체가 그 당시에 유대교 안에서조차 아직 보편화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이후 오리게네스의[[오리게네스]]의 헥사플라나 아타나시우스의[[아타나시우스]]의 부활절 서신 등에서도 이러한 독특한 기독교의 좁은성경 목록의 경향성은 계속 드러난다. 대개 동방교회는 이러한 '좁은 성경 목록'의 입장을 보인 교부들이 많은 편이고, 이는 동/서 교회의 내적 갈등을 반영한다고 볼 수도 있다.
 
문헌 상으로는 [[멜리토]]의 것처럼 정리된 목록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으나, 다수의 초대교회 교부들은 2경전이나 일부 외경들도 성경으로서 인용하는 이른바 '넓은 성경 목록'의 입장에 선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이 입장들은 교회 내적으로 정리되어 나가기 시작하였다. 그러한 정경화의 와중에 동/서 교회의 갈등도 점차 본격화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