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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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왕의 본명은 모대 또는 여대, 마모이고, [[일본]]의 [[일본서기]]와 [[속일본기]]에는 말다로 기록되어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동성왕은 [[전지왕]]의 손자로, [[개로왕]]의 동생 [[곤지]]의 아들이다. [[일본]]의[[일본서기]]에도 동성왕은 곤지의 아들이라 한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그의 모후의 이름은 전하지 않지만, [[일본]]의 신찬성씨록에 의하면 그의 어머니는 축자녀(筑紫女)라고 하는 일본 여성이었다.
 
[[일본]]에서 체류하다 사촌 [[삼근왕]]이 살해되자 아버지 [[곤지]]에 의해 [[백제]]로 보내져 즉위하였다. 동성왕은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481년]](동성왕 3년)에 [[신라]]의 북쪽 변경을 침공한 [[고구려]]와 [[말갈]]의 연합군을, [[신라]] 및 [[가야]]와 연합하여 격퇴했으며, [[484년]](동성왕 6년)에는 중국 [[남조]](南朝)의 [[유송남제]](劉宋)에도 사신을 보내고자 시도하고, 이듬해인 [[485년]](동성왕 7년)에는 [[신라]]에도 사신을 보내는 등 외교에도 힘을 쏟았다.
 
[[488년]](동성왕 10년) 백제를 침공한 [[북위 (북조)|북위]]의 기병을 사법명 등을 시켜 격퇴했으며, [[493년]](동성왕 15년) 신라의 왕녀를 맞이하여 왕비로 삼고, [[494년]](동성왕 16년)과 [[495년]] 두 해에 걸쳐 백제와 신라를 번갈아 침공해오는 고구려의 군대를 신라와 연합해 격퇴하는 등, 신라와의 동맹을 더욱 돈독히 다졌다. [[498년]]에 공물과 세금을 바치지 않는 [[탐라국]](지금의 [[제주도]])을 친히 정벌하고자 무진주(武珍州: 지금의 [[광주광역시|광주]])에 이르렀다가, [[탐라국]]의 항복을 받고 그만두면서 탐라국을 복속시켰다.<ref>[http://mamstar.com.ne.kr/samgugsagi/dl/108.htm 삼국사기/108東城王(동성왕)] 王以耽羅不修貢賦 親征至武珍州 耽羅聞之 遣使乞罪 乃止</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