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태 (1911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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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출신지는 [[전라남도]] [[완도군]]과 [[충청남도]] [[공주군]]의 두 가지로 전한다출신이다. [[니혼 대학]] 전문부 법과를 졸업한 뒤 [[1938년]]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하여 [[조선총독부]] 판사로 임용되었다. 일제 강점기 동안 청진지방법원 회령지청과 대전지방법원 청주지청 판사를 역임했다.
 
이후 [[변호사]]로 활동하던 중 [[대한민국 제1공화국|제1공화국]]에서 정계에 입문하여 [[이승만]]에 반대하는 세력을 대표해 강경 투쟁을 벌이면서 3선 의원이 되었다. "자유당 치하에서 가장 학대받은 사람"이라는 평과 함께, 물불을 가리지 않는 투쟁에 [[자유당 (대한민국)|자유당]]을 공격하는 빠른 독설로 "기관총"이라고 불렸다는 일화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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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분류:고등문관시험 합격자]]
[[분류:광산완도군 김씨출신]]
[[분류:전라남도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