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다이라 사다노부 (1759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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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정위임론]]을 펴서 조정의 권위를 막부에 이용하려 했던 사다노부는, [[고카쿠 천황]]이 친아버지에게 태상천황의 칭호를 올리려는 것에 대해 [[주자학]]에 입각하여 반대하였고, 이 [[존호 사건]]을 계기로 아버지 히토쓰바시 하루사다에게 [[오고쇼]]의 존호를 올리려던 쇼군 이에나리와 대립하였고, 결국 [[1793년]], 해상 방어를 위해 출장중일 때 사직 명령을 받았다. 사다노부는 이때 은퇴하였지만 [[마쓰다이라 노부아키라]], [[마키노 다다키요]] 등 사다노부파 로주들은 그대로 유임되어 사다노부의 정책을 계승했다. 실각한 사다노부는 시라카와 번 경영에 전념했고, 산지가 많아 실제 수입이 적은 번 재정을 개선하기 위해 말 생산을 장려하였고, 민정에 진력하여 명군으로 이름을 떨쳤다. 하지만 [[1810년]], 로주 재임 당시에 계획한 에도 만 경비가 실시되면서 그 최초의 주둔 임무가 주창자인 사다노부가 있는 시라카와 번에 내려졌고, 이로 인해 재정적 타격을 입게 되었다.
 
[[1812년]], 가문을 장남 [[마쓰다이라 사다나가 (1791년)|사다나가]]에게 계승하게 하고 은퇴했지만, 번의 실권은 여전히 쥐고 있었다. 사다나가 재임 때 히사마쓰 마쓰다이라 가문의 옛 영지인 [[구와나 번]]으로 영지를 바꾸게 된 것도 사다노부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고도 한다. [[1829년]], 72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 같이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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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후임|
|전임자=[[마쓰다이라 사다쿠니]]
|후임자=[[마쓰다이라 사다나가 (1791년)|마쓰다이라 사다나가]]
|직책=[[시라카와 번]] 번주 (히사마쓰 마쓰다이라 가문)
|대수=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