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첩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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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글 영어판 분류 정보를 이용.+분류:기원전 1세기 중국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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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여 반씨'''(婕妤 班氏 B.C 48~2)는 [[전한 성제|한 성제]]의 후궁이며 유명한 여류 시인이다.
 
== 실총하여 모함을 받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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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궁에 할머니와 손자간의 싸움은 서로를 중병에 이르게 만들었고 먼저 병으로 세상을 떠난 부태후를 뒤따라 한애제도 붕어하고 만다. 이때 왕정군은 황제의 옥쇄를 움켜줘고 급히 왕망을 불러 대사마의 직위에 올리고 중산왕의 아들 유연을 새황제에 올리고 죽은 부태후와 그때까지 살아있던 황태후 조비연, 동현의 세력을 일순간에 숙청했는데 아둔했던 그녀에게 이러한 비상한 책략을 내놓은 것은 바로 장신궁에서 왕정군을 곁에 모시던 반첩여였다.
 
한성제가 아끼던 조비연은 황태후, 황후, 서민으로 신분으로 추락하다 결국 강요 못이겨 자살했으나 반첩여는 홀로 한성제의 능묘를 지키며 그의 추억하는 것으로 일생을 보냈다고 한다. 최후에 웃는 자는 바로 그녀였다. 비록 황제의 사랑은 오랫받진 못했으나 후대의 많은 시인과 문인들에게 사랑을 받는 여류시인으로시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후에도 그녀의 일가인 반씨는 대단한 운을 타고 났는데 후한말까지 한나라의 정치판에 참여해 크고 작은 일을 겪으면서도 정치적으로 어떤 피해도 입지 않았다. 그 예로 화희황후 등씨의 스승이었던 여학자 반소를 들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