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상 (조선귀족):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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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글 이장훈 (19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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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군부주사(軍部主事)에 임명된 것을 시작으로, 지방의 군수 벼슬 등을 지냈다. 처음에는 [[명성황후]]의 총애를 받아 등용되었다가 친러파, 친일파로 재빨리 변신하며 활동한 이근택의 후광을 입고, [[이탈리아]] 특명전권공사와 농상공부대신 서리 등에 임명되면서 빠른 속도로 고위직에 올랐다.
 
[[1906년]] 궁내부대신이 되었고, [[1910년]] [[한일 병합 조약]] 체결에 세운 공로로 남작 작위를 받았으며, [[중추원조선총독부 (일제시대)|중추원]] 고문에 임명되었다. [[조선식산은행]] 감사를 지내기도 했다.
 
== 사후 ==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자작 작위를 습작한 장남 [[이장훈 (조선귀족1917년)|이장훈]]과 함께 선정되었다.
 
조선귀족 작위를 받은 두 형 [[이근호 (1860년)|이근호]], 이근택과, 조카인 [[이창훈 (이근택의 아들)|이창훈]]도 두 명단에 모두 포함되었다. 일제 강점기를 통틀어 삼형제가 조선귀족에 봉해진 경우는 이근상의 집안이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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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 : [[이근호 (1860년)|이근호]]
* 형 : [[이근택]]
* 아들 : [[이장훈 (조선귀족1917년)|이장훈]]
 
== 같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