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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약의 조항에 따르면 루이 14세의 손자인 [[스페인의 펠리페 5세|앙주 공작 필리프]]는 펠리페 5세로서 스페인의 왕으로 즉위하는 것이 인정되고 따라서 전왕 [[카를로스 2세]]의 의지로 명문화된 계승이 공고히 되었다. 그러나 필립과 그의 후손들은 그들이 프랑스의 왕권을 계승하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 하는 의문에도 불구하고 조약이 체결된 때부터 즉시 프랑스의 왕위 계승권을 포기하도록 강요받았다. 똑같은 상황이 [[베리 공작]](루이 14세의 가장 어린 손자)과 [[오를레앙 공작]](루이 14세의 조카)과 같은 프랑스 공작들에게도 강요되었는데, 이들과 이들의 자손들은 스페인의 왕권에 대한 주장을 포기해야만 했다.
 
[[스페인]]의 유럽 영토 역시 분할되었다. 사보이아는 [[시칠리아]] 섬<ref>나중에 [[샤르데냐 섬]]과 맞바꾼다.</ref>과 [[밀라노 공국]]의 일부를 받았고, [[신성로마제국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이자 오스트리아의 대공인 [[카를 6세]]는 스페인령 네덜란드와 [[나폴리 왕국]], [[사르데냐]] 그리고 [[밀라노 공국]]의 대부분을 받았다. [[포르투갈]]은 [[브라질]]에 있는 [[아마존 강]]과 [[오야포크 강]](Oyapock) 사이의 땅에 대한 영유권을 인정받았다. 1715년 포르투갈인들은 스페인에 의해 빼앗겼던 [[우루과이]]의 [[콜로니아델사크라멘토]]를 탈환했다.
 
덧붙여 스페인은 [[지브롤터]]와 [[미노르카마요르카]]를 [[그레이트브리튼]]에 양도하고, 아주 이익이 많이 나는 [[노예 무역]] 계약의 독점권인 [[아시엔토]] 역시 그레이트브리튼에 주는 데 동의하였다. 북 아메리카에서 프랑스는 영국에게 [[루퍼츠랜드]]와 [[아카디아]], [[뉴펀들랜드]]에 대한 권한을 영국에 양도하였다. [[세인트 키츠]]섬의 거의 대부분의 지역도 또한 그레이트브리튼에 전적으로 양도되었다. 프랑스는 또 그레이트브리튼이 [[이로쿼이]]족에 대한 그레이트브리튼의 종주권과 교역할 수 있는 먼 지역의 인디언들은 그 어떤 나라와도 무역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도록 강요받았다. 프랑스는 일레 생 장(지금의 [[프린스 에드워드 섬]])과 후일 [[루이스버그 요새]]가 세워지는 일레 로얄레(지금의 [[카페 브레톤 섬]])을 포함한 다른 북 아메리카 영토들을 유지할 수 있었다. 연속되는 상업적인 조항들 역시 체결되었다.
위트레흐트 조약이 체결된 후에도 프랑스는 [[바덴 조약]]과 [[라슈타트 조약]]으로 적대행위가 끝나기 전까지 신성로마제국의 카를 6세와 1714년까지 전쟁을 계속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신성로마제국과 새로운 [[부르봉 왕조]]의 스페인이 1720년까지 평화조약을 체결하지 않고 있던 반면에, 1750년에 [[마드리드 조약]]이 체결되기 전까지 서로 공식적인 전쟁상태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