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광홍: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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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장흥]] 출생이다. 고조부인 회(繪)가 현감(縣監)을 지내고 [[1429년]] 부남(府南)으로 이거하여 백광홍은 기산(岐山)에서 태어났다.
 
[[1542년]](중종 37)에 생원시에 입격하고, [[1552년]](명종 7) 식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홍문관정자로 임명되고, [[1553년]](명종 8) 시부회(詩賦會)에서 장원하여 선시십권(選詩十卷)을 상으로 받고 호당(湖堂)에 뽑혔다. 그 뒤 [[1555년]](명종 10) 봄에 평안도평사가 되어 관서지방의 절경과 생활상·, 자연풍물 등을 돌아다녀 보고, 그 아름다움을 읊은 「관서별곡(關西別曲)」을 지었다.
 
관서별곡은 우리나라 기행가사(紀行歌辭)의 효시로, 그의 문집 『기봉집』에 실려 있다. 이 작품의 영향을 받아 25년 뒤에 [[정철]](鄭澈)은 체제와 수사(修辭)를 모방하여 「관동별곡」을 지었다. 아우인 풍잠(風岑) [[백광안]](光顔), 옥봉(玉峯) [[백광훈]](白光勳), 종제인 동계(東溪) [[백광성]](白光城)과 함께 모두 시문에 뛰어나 '일문 사문장(一門 四文章)'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