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 사투르니누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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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호민관 시기==
[[기원전 100년]]에 사투르니누스는 다시 [[호민관]]에 선출되었고, 마리우스는 6번째로 [[집정관]]이 되었다. 사투르니누스는 새로운 농지법을 들고 나왔는데 킴브리 족과의 전쟁이 끝난 후 퇴역한 마리우스의 병사들에게 [[갈리아]]의 킴브리 족의 땅을 무상으로 분배하는것, [[시칠리아]]와 [[마케도니아 (로마)|마케도니아]] 및 아카이아에 로마 식민도시를 건설하는 것, 이탈리아 인들에게 로마 시민권과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는 것등 개혁적인 내용이었다. 이것은 다시 보수파와 원로원의 귀족파에게 도전장을 내민 것이었고 원로원은 반대햇으나 사투르니누스는 마리우스의 퇴역병을 모아 시위를 벌이면서 결국 통과시켰다. 사투르니누스 일파는 더 나아가 민회에서 가결된 법안에 대하여 [[원로원]] 의원은 5일이내에 법안을 인정하는 선서를 해야한 다는 조항을 추가시켰고 원로원은 이에 강력히 반대했다. 집정관 마리우스는 중간에서 이를 중재해야하는 입장이었지만 먼저 나서서 그 선서를 하고 말았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메텔루스 누미디쿠스]]는 끝까지 선서를 거부하고 망명했고 많은 원로원 의원이 마리우스의 반대파로 돌아섰다.
 
==죽음과 그 이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