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도: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태그: m 모바일 웹
36.38.133.30(토론)의 17954185판 편집을 되돌림
193번째 줄:
}}</ref> 이병도의 증언에 따르면 이병도가 이완용의 관 뚜껑을 불사른 이유는 "매국노의 관 뚜껑을 박물관에 전시하는 것에 반대"하였기 때문이었다.<ref>진단학회 編, <실증사학과 민족사학> - 두계선생과 정홍준씨의 대담,《역사가의 遺香》pp.273~276, 일조각, 1991</ref>
* 이병도의 조부 이태용과 [[이완용]]은 이완용의 생계(生系)로는 36촌, 양계(養系)로는 22촌 간이다. 이완용이 [[이호준]](李鎬俊)의 양자로 들어가면서 조금은 가까워졌으나 친척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이완용]]과는 5백년 전에 집안이 갈라졌다는, 이장무의 해명은 다소 과장이다. 양계(養系)로 보면 240년 전에 갈라졌다.
 
* 이병도가 조선사편수회에서 일했고, 이완용이 고문으로 있었기 때문에 서로 아는 사이였고, 이병도는 같은 우봉이씨로서 이완용을 족조로 받들고 각별한 친분을 유지했을 것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이러한 것들이 이완용손자설의 근저가 된 것으로 보인다.
 
== 윤치영, 윤보선 가문과의 관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