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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포지역이 있던 고성군 일대는 해안지대에 면해있고 그당시에는 김해평야가 [[고 김해만]]이라는 바다였던 것과 같이 해수면의 높이가 지금보다 높아 수산업이 주종을 이루었고 농업과 수렵도 이루어졌다. 이 지역에서 가야공업의 주인 제철이 이루어졌었음은 동외동 유적에서 확인이 되었지만 직접 철광을 운영했는지는 불분명하다. 고성지역의 가야시대 유적은 동외동 패총을 비롯해 7~8개 지역이 확인되었는데 대개 주요 계곡과 하천변에 분포하고 있었다. 이지역에서 출토된 토기는 다른지역에 비해 종류의 분화가 덜 되어 있었다. 마을은 구획 정리가 대체적으로 잘 되어 있었다고 한다. 주거는 아직 수혈식이 주종이지만 원시적인 온돌도 확인되었다. 장례의식은 연당리와 율대리에서 호석 주변에 토기를 깨부숴서 깔아놓은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인근지역에서도 흔히 보이는 것이다. [[사물국]]의 영역이지만 한때 고사포국에도 속했던 듯 해 고성문화권으로 간주되는 인근 [[늑도]]지역에서는 개를 죽여 껴묻거나 시체 위에 육류를 얹여놓은 것을 보이기도 한다. 이는 [[옥저]]에서 목곽에 쌀(米)을 넣은 항아리를 매달아 놓는 풍습과 비교된다. 중국의 [[은나라]]처럼 동물의 뼈를 태워 점을 친 흔적도 발견되었는데 이는 고대사회에서 널리 이루어진 일이고 변한시대 이래 이루어진 [[문신]](文身)도 계속 되고 있었다.
 
== 역대 국왕 ==
 
== 소가야 이후의 고성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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