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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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하얼빈]]에서 [[이원일]]과 함께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했다. 시신은 [[한용운]]이 수습하여 장례를 치렀다.<ref>만해기념관, [http://www.manhae.or.kr/library2-7.htm 만해 한용운의 일대기 - 7.심우장의 정절]</ref>
 
== 평가 사후==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헌을 기리기 위하여 [[1962년]] 건국공로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김동삼은 유교적 학식과 함께 '만주의 호랑이', '남만의 맹호’로 불릴 정도로 용맹한 기질을 겸비하여 [[김좌진]], [[오동진 (1889년)|오동진]] 등과 [[맹장|3대 맹장]]으로 불리기도 했다.<ref>하민지 인턴기자 [http://www.newsmission.com/news/2008/02/01/1512.21991.html 2월에 기릴 인물, 독립운동가 오동진-문태수 선생] 뉴스미션 2008년 2월 1일 작성</ref>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독립기념관]]에 옥중 유언인 다음 문구를 적은 어록비가 세워져 있다. {{인용문|나라 없는 몸 무덤은 있어 무엇하느냐. 내 죽거던 시신을 불살라 강물에 띄워라. 혼이라도 바다를 떠돌면서 왜적이 망하고 조국이 광복되는 날을 지켜보리라.}}
[[독립기념관]]에 옥중 유언인 다음 문구를 적은 어록비가 세워져 있고, *고향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278번지 생가 자리에는 그의 생가 터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있다.
 
== 평가 ==
[[독립기념관]]에 옥중 유언인 다음 문구를 적은 어록비가 세워져 있고, 고향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278번지 생가 자리에는 그의 생가 터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있다.
김동삼은 유교적 학식과 함께 '만주의 호랑이', '남만의 맹호’로 불릴 정도로 용맹한 기질을 겸비하여 [[김좌진]], [[오동진 (1889년)|오동진]] 등과 [[맹장|3대 맹장]]으로 불리기도 했다.<ref>하민지 인턴기자 [http://www.newsmission.com/news/2008/02/01/1512.21991.html 2월에 기릴 인물, 독립운동가 오동진-문태수 선생] 뉴스미션 2008년 2월 1일 작성</ref>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인용문|나라 없는 몸 무덤은 있어 무엇하느냐. 내 죽거던 시신을 불살라 강물에 띄워라. 혼이라도 바다를 떠돌면서 왜적이 망하고 조국이 광복되는 날을 지켜보리라.}}
 
== 참고자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