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궁과 월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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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안압지에서 발굴된 토기 파편 등으로 신라시대에 이 곳이 '''월지'''(月池)라고 불렸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는 신라 왕궁인 [[경주 월성|반월성]](半月城)과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며, 임해전의 이름도 본디 월지궁이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폐허가 된 이곳에 기러기와 오리들이 날아들자 조선의 묵객들이 '''안압지'''(雁鴨池)라는 이름을 붙였다. 《[[삼국사기]]》에 동궁을 임해전(臨海殿), 즉 바다에 면한 건물이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있으며, 여기에서 안압지는 바다를 상징한다.
 
== 같이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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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령구]]
 
== 각주 ==
{{각주}}
 
== 참고 자료 ==
{{글로벌세계대백과사전|제목=[[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한국사/고대사회의 발전/통일신라와 발해/고대문화의 융성#안압지|한국사 > 고대사회의 발전 > 통일신라와 발해 > 고대문화의 융성 > 안압지]]}}
 
== 사진 ==
<gallery mode=packed-h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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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신라천년의빛.jpg|안압지 야경
</gallery>
 
== 각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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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자료 ==
{{글로벌세계대백과사전|제목=[[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한국사/고대사회의 발전/통일신라와 발해/고대문화의 융성#안압지|한국사 > 고대사회의 발전 > 통일신라와 발해 > 고대문화의 융성 > 안압지]]}}
 
== 바깥 고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