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어학회 사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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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덕규(權德奎)와 안호상(安浩相)은 신병(身病)으로 구속을 면하였는데, [[1943년]] 3월 말경까지 29명이 검거되어 대체로 1년간 [[홍원군|홍원]](洪原)경찰서 내 유치장에서 온갖 야만적 악형과 혹독한 고문을 받았고, 48명이 취조를 받았다.
*33명 중 16명을 '조선민족정신을 유지한', '치안유지법 위반’이라는 죄명으로 기소, 함흥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고 한다.
*[[이윤재]], [[한징]] 미결감 옥중 사망
*재판 또는 복역 도중 [[1945년]] 광복을 맞이하여 8월 17일 부 석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