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울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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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울지는 다른 수단을 이용하여 잉글랜드의 힘을 주장할 수 있었다. [[1517년]] [[교황 레오 10세]]는 오스만 제국의 술탄 [[셀림 1세]]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십자군]] 운동을 일으키고자 하였다. 1518년 [[교황특사]]가 된 울지는 교황을 위해 런던 조약을 조직하여 합법화하였다.
 
[[1518년]] [[런던 조약 (1518년)|런던 조약]]은 유럽의 중재인으로서의 울지를 보여준 것으로, 20개국을 포함한 광범위한 평화 정상회담을 조직하였다. 이 덕분에 잉글랜드는 고립에서 벗어나 유럽 외교의 맨 앞에 등장하여 바람직한 동맹국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는 이틀 후에 맺은 영불 조약으로도 잘 알 수 있다.
 
반어적으로 이 평화조약은 부분적으로는 프랑스와 스페인의 대립을 가져왔다. [[1519년]] 카를이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자리에 올랐을 때,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는 노발대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