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경기전 정전: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62번째 줄:
경내에는 조선 태조 어진을 모신 본전과 전주 이씨의 시조로 전해지는 사공공 이한의 위패를 봉안한 조경묘, 조선 왕조의 실록을 보관했던 전주사고(복원), [[조선 예종|예종]]의 탯줄을 묻은 태실 등의 유적이 있다. 건물의 구성은 본전, 본전 가운데에서 달아낸 헌(軒), 본전 양 옆 익랑(翼廊)<ref>문의 좌우에 잇대어 지은 행랑.</ref> 등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를 두르고 있는 내삼문(內三門) · 외삼문(外三門) 등으로 공간을 분할하고 있다.
 
;본전
:본전은 남향한 다포식(多包式) 맞배집 건물로, 높게 돋우어 쌓은 석축 위에 앞면 3칸, 옆면 3칸으로 세웠는데 건물 안의 세 번째 기둥렬(柱列)에 고주(高柱)를 세우고 그 가운데에 단(壇)을 놓았다. 이 단 양 옆에는 일산(日傘)과 천개(天蓋)를 세웠다. 본전 앞에 내단 헌은 본전보다 한 단 낮게 쌓은 석축 기단 위에 4개의 기둥을 세우고 2익공식(二翼工式) 포작(包作)을 짜올린 맞배지붕 건물이다. 본전과 헌이 이루는 구성은 왕릉에 제사를 지내려고 세운 정자각(丁字閣)의 구성과 같다. 또한, 본전 양 옆에는 익랑 2칸, 무(廡, 전각 주위에 세운 행랑) 4칸이 있다.
 
;조경단
내삼문은 앞면 3칸, 옆면 2칸으로 된 3문으로 그 양 옆에 익랑 2칸을 두었다. 외삼문은 앞면 3칸, 옆면 1칸인 맞배지붕 건물로 익랑을 두지 않았으며, 옆면 가운데에 사이기둥을 세워 삼문을 달았다.
:전주 이씨의 시조로 전하는 신라 시대의 사공공 이한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곳이다.
 
;내·외삼문
:내삼문은 앞면 3칸, 옆면 2칸으로 된 3문으로 그 양 옆에 익랑 2칸을 두었다. 외삼문은 앞면 3칸, 옆면 1칸인 맞배지붕 건물로 익랑을 두지 않았으며, 옆면 가운데에 사이기둥을 세워 삼문을 달았다.
 
== 각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