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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시절 비공개 특사로 평양을 방문, 민족평화축전 개최를 합의하고, 해방 이후 최대의 남북공동행사였던 민족평화축전을 2003년 10월 제주도에서 성공적으로 마쳤다. 일제가 약탈해 간 문화재의 환수위원회를 결성하고, 평양을 방문, 남북공조로 일본을 압박하여 북관대첩비, 조선왕조실록 및 조선왕실의궤를 되돌려 받기도 했다. 2004~2006년 '깨끗한 정치인'이라는 도덕성에 힘입어 국회의원의 비리, 부패를 심사하는 국회 윤리특별위원장의 직책을 맡았다. 2006~2008년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장으로 한미FTA협상에 임하면서 미국을 10여 차례 방문, 미국 의회와 국무성의 고위인사와 담판하여 한류의 바탕이 되고 있는 스크린쿼터제를 지켜냈고, 개성공단제품을 한미FTA에 포함시켰다. 또한 국제사회에서 침략으로 비판받는 이라크전에 한국군 파병 등 불리한 여건 속에서, 반기문 UN사무총장의 선거대책위원장 역할을 맡아 세계 주요국가 지도자들을 설득해냈다. 2007년 17대 대통령선거에 출마의지를 밝혔다. 그러나 실제 출마하진 못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야4당 연합후보(민주당, 국민참여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로 대전시장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2011년부터 현재까지 독립운동가들인 안중근, 윤봉길, 여운형, 신채호, 김성숙, 선생 뜻을선생리등 20여 기념사업회들이 뭉쳐 항일독립운동가단체연합회를 결성하였고 그 대표를 맡고 있다. 이명박정부의 한일군사협정 체결 시도를 저지했다. 박근혜정부가 식민지배를 찬양하고, 독재를 미화하는 역사교과서를 검정 통과시키자 ‘미래 세대에 대한 범죄’라고 비판하며 이 교과서의 채택을 저지하는 데 중심역할을 했다. 우리 민족 공동체의 모든 모순과 갈등의 원천은 남북 분단과 친일 미청산에 있다는 인식 하에 우리 민족의 자주역량 배양과 식민잔재청산, 민족화해협력에 힘쓴 인사들을 ‘우리시대의 독립군 100인’으로 선정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김원웅이 주도하는 이 작업에는 생존 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후손, 민족운동단체들이 함께 하고 있다.
 
현재 강원도 인제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허준약초학교’(사회적 협동조합)를 운영하며, 귀촌·귀농희망자에 대한 지원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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