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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기한인 [[1929년]] 5월 이전까지 책진회가 군정부를 조직하지 못해 [[김좌진]], [[김시야]] 등은 북만주로, [[이청천]]은 오상(五常)현으로 [[김희산]], [[박희곤(朴希坤)]], [[이백파]] 등은 남만주로, 각자의 근거지로 돌아간 후 일부가 일본 관헌에 체포됨으로써 촉성회는 유명무실하게 되었다. 이후 책진회는 정의부에서 탈퇴하여 [[김동삼]], [[김상덕]], [[김원식]] 등에 의해 근근히 유지되었다.
 
김좌진 등은 원래 신민부의 근거지였던 중동선 석두하자(石頭河子)에서 동지를 규합하고 민족단체를 조성하면서 [[1929년]] 8월 [[한족총연합회]](韓族總聯合會)를 조직<ref>그 강령을 보면, 1. 국가에 완전한 독립과 민족의 철저한 해방, 2. 민족생활의 안정 및 혁명적 강령의 철저, 3. 혁명민중의 조직 완성이었다. </ref>하면서를 조직하면서 세력을 세력의만회하는 만회에 주력하였다. 한족총연합회는 순 국수파인 김좌진 등과 무정부주의자의 일파인 [[남대하]](南大廈)를 비롯하여 국내 인사들이 제휴한 단체로 중동선 일대를 관할할 수 있는 영안현 산시(山市) 역전에 본부를 두고 주석에 [[김좌진]]이 취임하였다. 그러나 [[1930년]] 1월 24일 김좌진이 반대파인 [[재중국청년동맹]] 일파인 공산주의공산주의자 청년에게 암살됨으로써 분열하여 [[정신]] 등에 의해 '[[한족자치연합회]]'로 개칭되었다가, 그해 7월 [[홍진]], [[이청천]], [[민무(閔武)]], [[안훈(安勳)]], [[황학수]], [[신숙]], [[이장녕]](李章寧) 등이 추진하던 [[한국독립당 (1930년)|한국독립당]]에 합류함으로써 북만주 유일독립당의 조직으로 항일운동을 전개하게 되었다.
 
===협의회파 (민족유일당조직동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