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생산건설병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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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혁명 시기의 인민해방군을 전신으로 하는 신강지역의 독특한 생산조직으로서 농․임․목축업에서 공업 및 관광업에 이르기까지 신강 전 지역의 경제활동 분야를 장악하고 있는 조직이다. 특히 신강의 농업은 1949년 이래로 인민해방군 생산건설부대에 의해 확장되고 현대화되어 왔다. 전통적인 농업 중심지인 남부 오아시스 지역과 伊犁-塔城 지역에서 기존농경지를 확장시켰을 뿐만 아니라, 우루무치의 서북부, 石河子市 주변, 昌吉回族自治州와 같은 북쪽 지역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농경지를 개간하였으며, 관개시설 또한 상당한 속도로 확장시켰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생산건설부대에 의해 농업 기계화가 활발히 추진되어서, 1987년에 이미 파종 전 밭갈이의 2/3, 파종의 1/2 이상, 추수의 1/5 정도가 기계에 의해 이루어지게 되었다.
 
인민해방군은 1949년 국민당으로부터 신강지역을 평화적으로 인계받은 후, 10만 명의 군인을 신강지역에 파견하여 -다른 지역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생산건설병단을 세웠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병단으로는 흑룡강, 내몽고, 티베트, 해남섬항등난 등에 세워진섬워진 것을 들 수 있으나,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병단은 신강성에 세워진 것이었다. 왜냐하면 다른 모든 생산건설병단은 1975년에 모두 폐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신강생산건설병단만 1982년에 유일하게 부활되었기 때문이다. 신강의 병단은 1950년 처음 설립되었을 때, 당시 이 지역 최고 군 지도자였던 왕진의 지휘 아래서, 군사․정치․경제 방면의 다양하고 복합적인 기능을 수행했다. 처음에는 대부분의 인원이 군인이었으나, 점점 현지 출신이 아니라, 동부 연해 지방에서 보내진 젊은이들로 대체되었다. 병단은 변경 수비 임무를 띤 준군사적인 기관으로서, 언제나 공산당의 정치적 입장을 지지하는 것이 임무이기도 했지만, 그와 더불어 토지개척, 도로 등의 기간시설 건설, 특정 농작물 장려, 새로운 산업과 광산 개발 등의 주요한 경제적 임무 또한 띠고 있었다. 비록 병단 산하의 농장, 목장, 산업기업, 비농업기업들이 북강과 남강 지역에 모두 존재하지만, 그 활동 범위와 규모는 북강지역에서 더 활발하다.
 
== 역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