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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구 문물 견학 ===
경종이 즉위한 후 노론 4대신의 한사람으로서 연잉군을 후사없는 경종의 왕세제로 책봉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그 뒤 왕에게도 연잉군을 왕세제로 책봉할 것을 주청하여 성사시켰다. [[1720년]] 숙종의 승하를 알리기 위해 고부사(告訃使)로 청나라에 파견되어 [[베이징|연경]]에 다녀왔다. [[베이징|연경]]에 도착하여 그는 그곳에서 [[독일]], [[포르투갈]]의 신부들과 서양인 학자들을 만나 가까이 지내면서 담론하였고, 그들의 영향을 받아 [[천주교]]를 비롯한 천문학, 역산 등에 관한 책을 가지고 이듬해 귀국하여 이를 국내에 알리고, 널리 소개하였다.
 
고부사로 청나라의 연경에 갔다가 서양 신부들과 학자들을 사귀고, 돌아올 때 천주교와 서양 서적들을 들여오는 등 서양 문물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남인]]과 [[소론]]은 이를 꼬투리 잡고 문제삼아 그를 계속 공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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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노론]] 4대신의 한 사람으로서 [[김창집]]·[[이건명]]·[[조태채]]와 함께 빈청에 모여 심중에 있는 사람을 세자로 세우기로 정하고, 그 이름을 써서 펴보이기로 하니 모두 '양'자를 써서 보였다. 이는 [[영조]]가 즉위하기 전의 아호가 양심헌으로 양자를 말하는 것이었다.<ref name="대동"/> 그러나 훗날 [[소론]]에서 무고하기를 '양'자는 그의 자인 양숙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탄핵하였다.<ref name="대동"/> 남인과 소론은 그가 환국으로 사형당한 이사명의 동생이라는 점과, 그가 서양 문물에 호의적이고 개방을 주장하는 것, 숙종과 비밀 독대를 한 점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며 공격한다.
 
이후 경종의 병환이 위중해지자 노론 4대신과 함께 세제 대리청정을 제기하여 [[영조]]의 대리청정을 실현시켰으나, [[소론]]의 반발로 실패하여 파직당하고 [[경상남도]] [[남해]]로 유배되었다. 그 뒤 역모 고변이 터져, 그의 아들 이기지가 관련된 목호룡의 고변 때 임금으로 추대받았다는 혐의를 받고 서울로 압송되었다. 압송 도중 한강진(漢江津)에 도착하여 사사되었다가 영조가 즉위한 후 복관되었다. 과천의 사충서원(四忠書院)에 제향되었다.
 
=== 사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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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도삼충전》(江都三忠傳)
 
== 관련작품 ==
* 《대박》(SBS, 2016년, 배우: 박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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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조선의 왕족]]
[[분류:노론]]
[[분류:권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