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리나 스포르차 디 포를리 백작부인"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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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라바르디노 성의 대리 성주인 톰마소 페오는 리아리오 가문에 충성을 맹세하였기 때문에 음모자들에게 성채를 인도하려고 하지 않았다. 백작부인은 음모자들에게 만일 자신을 성 안으로 들여보내준다면 대리 성주를 설득해 성채를 넘겨 주겠노라고 확신을 갖게 하였다. 그녀의 아이들은 인질로 남은 채 그녀 혼자 성 안으로 들어갔지만, 음모자들이 위협용으로 집중 포화를 날리고 복수하겠노라고 외쳤음에도 그녀는 일절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들이 아직도 포로로 잡고 있는 카테리나의 아이들을 성채 앞으로 끌고 가 죽이겠다고 위협했을 때 그녀는 성벽 위에서 치맛자락을 걷어올려 자신의 [[여성의 성기|성기]]를 드러내보이며, 이것만 있으면 아이쯤은 앞으로 얼마든지 더 낳을 수 있으니 걱정하지 않는다고 외쳤다. 그녀의 삼촌이자 밀라노 공작인 [[루도비코 일 모로]]가 보낸 군대와 함께 그녀는 자신의 적들을 패배시키고 그녀의 모든 영토의 소유권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에 반대하고 자신의 힘을 재확립시키게끔 했던 사람들에게 철저한 응징을 가했다.
 
과부가 된 그녀에게는 몇 명의 연인이 있었으며, 그 가운데 [[자코모 페오]]와는 몰래 결혼하였다. 페오는 평소 그의 잔혹함과 오만함을 싫어했던 사람들에 의해 1495년 8월 27일 그의 아내의 눈 앞에서 살해당했다. 카테리나는 암살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과 여자와 아이까지 포함한 그들의 가족들을 모두 사형시키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녀는 새 [[교황 알렉산데르 6세]]와 [[피렌체]] 사람들과 친분 관계를 맺었다. 1465년 그녀는 피렌체 공화국의 대사로 부임한 [[조반니 데 메디치 일 포폴라노]]와 비밀 결혼을 하였다. 조반니는 1498년에 죽었지만, 카테리나는 루도비코 일 모로와 피렌체 사람들의 도움 덕분에 [[베네치아 공화국|베네치아]] 사람들의 공격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주권을 지켜냈다.
 
하지만 그녀가 교황 알렉산데르 6세의 딸 [[루크레치아 보르지아]]와 그녀의 아들 오타비아노 사이의 결합을 승낙하는 것에 대해 거절하자 교황의 분노를 사게 되었으며, 더구나 이 일을 계기로 [[교황령]] 회복이라는 명분으로 로마냐 지방을 정복 중이던 교황의 아들 [[체사레 보르지아]]가 그녀의 영토에 욕심을 내어 1499년 3월 9일 리아리오 가문이 빼앗긴 이몰라와 포를리의 지배권을 체사레 보르지아에게 양도한다는 [[교황 교서]]가 반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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