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토레 마요라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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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에 [[로마 라 사피엔차 대학교]]에 입학하여 공학을 연구하였으나, [[에밀리오 세그레]]의 권고로 [[1928년]]에 [[물리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1928년]]에 학부생 시절에 첫 물리학 논문을 발표하였다. 이는 오늘날 [[토머스-페르미 모형]]으로 불리는데, 이는 [[러웰린 토머스]]({{llang|en|Llewellyn Thomas}})가 거의 동시에 같은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1929년]]에 졸업하였다.
 
졸엄 후졸업후 마요라나는 [[물리학]] 연구를 계속했으나, 대부분 주목받지 못했다. [[1932년]]에 [[로런츠 군]]의 무한 차원 표현에 대한 논문을 저술하였고, 또한 [[이렌 퀴리]]와 [[프레데리크 졸리오퀴리]]의 실험 결과가 [[양성자]]와 비슷한 질량을 가진 중성 입자에 의한 것이라고 제안하였다.
<ref>[http://cerncourier.com/cws/article/cern/29664 Ettore Majorana: genius and mystery], [[CERN]] courier.</ref> 이는 오늘날 [[중성자]]의 존재에 대한 최초의 예측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마요라나는 ([[엔리코 페르미]]의 권고를 무시하고) 이를 출판하지 않았고, [[중성자]]의 발견에 대한 공로는 [[영국]]의 [[물리학|물리학자]]인 [[제임스 채드윅]]에게 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