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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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 언덕 위와 대조군 정조의 자경전 기입.
→‎구성: 위쪽은 다 안좋다는 듯한 부정화한 해석 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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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동쪽을 각각 바라보는 [[수원]] [[향교]] [[대성전]], [[화성 행궁]]의 배치와 [[종묘]] 정전, [[창경궁]]의 배치를 비교해보면 수원 대성전과 종묘 정전이 같은 위치, 화성 행궁과 창경궁이 같은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유교 가문에서 조상을 모시는 사당 건물을 집 북쪽에 두지 않고 남쪽으로 두겠는가 하는 지적을 적용하여 종묘를 북쪽에서 남쪽으로 바라보면 종묘는 북쪽, 창경궁은 남쪽에 위치하게 되는데, 이렇게 바라보면 창경궁은 명나라 방향 서쪽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이런 관점으로 바라보면 화성 행궁도 서쪽을 바라보게 되지만 수원 향교가 조상을 모시는 사당 자리에 위치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바라보면 창경궁을 이웃한 조선 성균관은 상석이 아닌 조상을 모시는 사당의 반대편 자리인 창경궁의 아래쪽 종묘 위치에 존재하게 된다.
 
[[명나라]]를 숭상하던 풍조를 제외하더라도 창경궁 내에서 천문을 관측하는 [[관상감]] 관원이 창경궁의 하늘을 살펴볼때 성균관은 등뒤에 두고 북쪽에서 남쪽을 종묘 쪽으로 바라보아야 했다.<ref>문화재청 창경궁관리소 풍기대 안내표지 (석재 풍기대가 아닌 언덕 위에 위치한 표지). [https://www.google.com/maps/place/%EC%B0%BD%EA%B2%BD%EA%B6%81+%ED%92%8D%EA%B8%B0%EB%8C%80/@37.5800404,126.9915338,1359m/data=!3m1!1e3!4m5!3m4!1s0x357ca2d7a9b2aad5:0xb8a6d67c90ddaf26!8m2!3d37.5802029!4d126.9946411 창경궁 내부 언덕 위에 관상감 관리의 근무 위치와 조선 성균관 대성전, 종묘 정전의 배치가 한눈에 들어오는 위성사진]</ref> 창경궁 내부에서 근처에 자경전 건물도 산 중턱으로 공손하게 후방이 제한된 전망을 제공하였지만 성균관 방향으로 불손하게 후방 시야까지 확보된 이 근무 위치는 언어학적으로도 언덕 위라는위에서 불손하다는 사실로 [[촉나라]]보다 [[위 (삼국)|위나라]]에 더 친화적인 모습이다.
 
== 유생 운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