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세스 2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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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히타이트]]와 전쟁을 벌이기는 했지만 [[실리]]를 추구할 줄도 알아서 [[히타이트]]와 휴전을 맺어 50년 동안 평화를 유지했다. 또한 [[아부심벨 신전]], [[카르나크 신전]], [[라메세움]] 등의 거대한 건축물을 이집트 전역에 건설하기도 했다.<ref>{{서적 인용 |제목= The Pageant of World History | 저자= Gerald Leinwand |연도=1986 |출판사=Allyn & Bacon |장=Prologue: In Search of History |쪽= 13 |id=ISBN 978-0-205-08680-1|인용문= Ramses built many magnificent buildings, including the temple at Abu-Simbel. }}</ref> 고대 [[파라오]]들에게 있어 자신의 업적을 후세에 알릴 수 있는 건축물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 성경에서의성경과 람세스 2세 ==
비록 출애굽기에서는 파라오의 이름을 명시하지 않지만, 일부 성서학자들은 구약 출애굽기의 파라오를 람세스 2세로 추정하기도 한다.
 
이 추정에 의하면, 람세스 2세는 [[모세]]와 함께 세티 1세의 밑에서 영재교육을 받았으며 모세와는 시종일관 파라오의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사이였다. 그러나 람세스 2세가 20대 초반이던 시기에 모세는 40살이였는데 이 무렵 모세는 동족인 이스라엘 민족이 노역을 당하는 모습을 보고는 감독을 쳐 죽여 혁명을 획책하였다. 하지만 모세의 지지세력이 없었기 때문에 모세는 파라오 계승권을 박탈당한 채 광야로 도주했다.{{출처|날짜=2016-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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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람세스 2세가 파라오로 즉위하였으며 모세가 감독관을 쳐죽이고 도주하던 시기로부터 40년 후 모세는 [[야훼]]의 명령에 따라 다시 람세스 2세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람세스 2세가 노동력 손실을 우려하여 해방요구를 거부하자 [[야훼]]는 람세스 2세를 초자연적인 10가지 재앙으로 굴복시킨다. 그래도 람세스 2세가 모세의 요구를 거절하자 모세는 자기 민족들을 이끌고 도주하였으며 람세스 2세는 이를 추격하지만 [[야훼]]가 모세를 통해 홍해를 바람으로 가르고 이스라엘 민족을 건너게 한다. 이를 뒤쫓던 람세스 2세는 갈라졌던 홍해가 다시 합쳐지자 더 이상 추격하지 못했다.{{출처|날짜=2016-08-24}}
 
다만 구약의 파라오가 람세스 2세인지는 다소 논란이 있다있으며, 이 정도의 시기를 이집트의 출애굽 시기로 보는 [[후기설]]에 따른다고 해도, 오히려 람세스 2세의 아들쪽의 가능성이 더 높다고 한다. 또한 출애굽기의 내용은 역사적 진위여부가 부정되기도 한다. 다만 람세스 2세의 상징성 때문에 매스미디아에서는 람세스 2세가 출애굽 시기인 것처럼 묘사하는 경향이 있다.
 
== 창작물에서의 람세스 2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