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 코끼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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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의 사례로 가장 유명한 것은 [[에페이로스]]의 [[피로스]] 왕이 로마와의 전투에서 동원한 전투 코끼리와 [[카르타고]]의 [[한니발]]이 [[2차 포에니 전쟁]]에서 동원한 전투 코끼리의 사례가 있다. [[이집트]]와 카르타고, [[누미디아]]와 [[쿠쉬 왕조]] 등은 북아프리카 코끼리를 사용하였는데, 이들은 서기 2세기 경 멸종된 별도의 아종으로 덩치가 [[셀레우코스 제국|셀레우코스 왕조]]의 코끼리보다 작았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더욱 남쪽에서는 아프리카의 일부 부족들이 [[아프리카 코끼리]]를 길들여 전투용으로 사용하려 한 사례가 있다. 그러나 이들이 인도 코끼리나 북아프리카 코끼리에 비해 큰 덩치를 가지고 있는 이유로 전투에서는 월등한 효과를 발휘했을 것으로 추측되나, 특유의 호전성과 조련 수단의 부족으로 난조를 겪었을 것으로 예상되며, 따라서 해당 코끼리들은 전장에서 널리 사용되지는 못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무적으로 알려진 칭기스칸의 몽골제국도 유라시아 세계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많은 전투코끼리부대들과 전쟁을 벌였는데, 그 첫 전쟁은 사마르칸드 공성전에서 벌어진 호라즘 왕조의 중장코끼리병과의 전쟁이었다. 그러나 잔인한 몽골군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처럼 겁먹지 않고 전투코끼리부대를 보자마자 바로 돌격하여 백병전을 펼치기도 하고, 또 파르티안 샷을 쏘면서 불화살을 날리기도 하는데 여기서도 몽골군의 기만 전술이 빛을 발했다. 전투코끼리부대가 쳐들어오면 퇴각하는 척하며 기병대가 파르티안샷으로 공격하고 후퇴하면 기병대가 추격하는 식을 반복하면서 호라즘 왕조의 중장코끼리병은 전멸하고 말았다.
 
그러나 잔인한 몽골군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처럼 겁먹지 않고 전투코끼리부대를 보자마자 바로 돌격하여 백병전을 펼치기도 하고, 또 파르티안 샷으로 공격하였다. 여기서도 몽골군의 전술이 빛을 발했다.
그리고 2번째 전투코끼리 부대와의 전쟁은 칭기스칸의 몽골제국이 페르시아를 정복한 후, 칭기스칸이 전사한 한참후인 1277년에 이미 몽골제국의 식민지가 된 페르시아 출신의 몽골 장군 나스룻딘의 1만 병력의 몽골군 기병대와 미얀마(버마)의 국왕 나라티하파티가 이끈 3천 마리의 전투코끼리 대군과 엔가송갼에서 벌어졌다.
 
호라즘왕조의 전투코끼리부대가 쳐들어오면 퇴각하는 척하며 몽골군 기병대가 후방에서 공격하고 호라즘왕조의 코끼리부대 후퇴하면 몽골군 기병대가 추격하며 칼과 활로 공격하는 식을 반복하면서 호라즘 왕조의 중장코끼리병은 전멸하고 말았다.
 
그리고 2번째 전투코끼리 부대와의 전쟁은 칭기스칸의 몽골제국이 페르시아를 정복한 후, 칭기스칸이 전사한 한참후인한참 후인 1277년에 이미 몽골제국의 식민지가 된 페르시아페르시아에서 출신의태어난 몽골 장군 나스룻딘의 1만 병력의 몽골군 기병대와 미얀마(버마)의 국왕 나라티하파티가 이끈 3천 마리의 전투코끼리 대군과 엔가송갼에서 벌어졌다.
 
이 전쟁에서는 몽골군의 군마가 진격하지 않자 군마에서 내려 일제히 코끼리대군을 향해 불화살을 날리며 저격하여 코끼리병이 초토화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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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파간 공성전이 이어지는데, 이 전쟁에서 몽골군은 파간 제국(미얀마를 최초로 통일 시킨 제국)을 통째로 멸망시킨다.
 
1257년 몽골제국을몽골제국은 여전히 정복전쟁을 강행하고 있었는데, 지금까지 호라즘 왕조 같은 중동 국가들이나 파간(미얀마)제국을 정복하여 가져온 전리품인 전투코끼리군대를 양성하여 제 1차 베트남 원정때 이용한다. 이 전투코끼리군대로전투코끼리군대

베트남군을 전멸시키는데 성공한다.
 
그후 몽골제국의 계승국을 자처한 [[티무르]]는 정복 과정에서 인도의 코끼리 부대와 맞닥뜨린 바 있으며, 이 전투에서 승리한 후 포획한 코끼리를 이용하여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에서 효과적으로 사용하였다. 이후 화약 무기가 발달하면서 코끼리 부대의 전투용으로서의 실용성은 차츰 떨어져 갔으나, 이후에도 화포 및 각종 보급품을 운반하는 용도로 계속해서 널리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