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츨라프 1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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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츨라프 1세가 국왕으로 즉위한 뒤부터 보헤미아는 [[오스트리아 공국]]의 공작으로 있던 [[프리드리히 2세 (오스트리아)|프리드리히 2세]]의 위협을 받고 있었다. [[1236년]] [[신성 로마 제국]]의 [[프리드리히 2세 (신성 로마 제국)|프리드리히 2세]] 황제가 [[오스트리아]]로 진격했다. 프리드리히 2세 공작은 [[빈]]을 떠나 [[비너노이슈타트]]로 도망치면서 공국의 나머지 영토를 지배했다.
 
프리드리히 2세 황제는 오스트리아 공국, [[슈타이어마르크 공국]]이 자신이 직접 통치하는 공작령이라고 선포했고 [[밤베르크]]의 주교였던 안덱스메라니아(Andechs-Merania)의 에크베르트(Ekbert)를 공작령의오스트리아 공국, 슈타이어마르크 공국의 지배자로 파견했다. 바츨라프 1세는 오스트리아의 프리드리히 2세 공작과 개인적인 동맹 관계를 수립하면서 신성 로마 제국의 프리드리히 2세 황제에 대항해 나갔다. 또한 보헤미아의 영토를 [[도나우 강]] 북부까지 확장했다.
 
[[1241년]]에는 [[오르다 칸]], 바이다르, 카단이 이끄는 [[몽골 제국]] 군대가 20,000명의 병사들을 이끌고 [[폴란드]], [[보헤미아]], [[실레시아]], [[모라바]]를 침공했다. 보헤미아가 [[레그니차 전투]]에서 패배한 이후에 바츨라프 1세는 [[튀링겐 주|튀링겐]], [[작센 선제후국]]의 지원을 받았지만 크워츠코(Kłodzko) 전투에서 몽골군에게 패배하고 만다. 보헤미아 기병대가 몽골군을 물리치면서 몽골군은 보헤미아, 폴란드를 우회해서 남하했고 [[모히 전투]]에서 헝가리를 물리쳤던 [[바투 칸]], [[수부타이]]와 합류하게 된다. [[1242년]] 수부타이는 [[우구데이 칸]]의 사망 소식을 듣고 철수하게 된다. 한편 [[칭기즈 칸]]은 [[카간]]의 자손들에게 몽골 제국의 수도인 [[카라코룸]]으로 귀환하여 다음 카간을 선출할 것을 지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