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에트-폴란드 전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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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쟁의 원인이 되었던 폴란드, 소련 분쟁 지역은 서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지역이었다. 이 지역은 원래 현대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인]], [[러시아인]]이 속한 [[동슬라브족]]의 땅이었다. 그래서 이 땅은 [[키예프 공국]]의 땅 중 일부였다. 그 후 [[모스크바 대공국]]이 키예프 공국을 이어받았으나 [[몽골 제국]]의 침략으로 [[키예프 공국]] 일대가 혼란에 빠진 틈을 타 서부 [[우크라이나]], 서부 [[벨라루스]] 당시 키예프 공국 서쪽에 있던 [[폴란드 왕국]]의 땅이 되었다.
 
[[1572년]] 폴란드에서는 [[야기에우워 왕조]]({{llang|pl|Jagiellonowie}})가 끝나고, 귀족들이 국왕을 선출하는 귀족 민주정이 실시되었다. 그러나 폴란드는 [[스웨덴]]과 전쟁, [[모스크바 대공국]]의 마찰 등으로 인해 국력이 쇠퇴한다. 이러한 정세 속에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러시아]]의 간섭이 시작되었고, 결국 [[1772년]]에 이들 세 나라에 영토를 빼앗기기 시작하다가, [[1795년]]에 최종적으로 완전히 분할된다. 폴란드인들은 [[1830년]]에 대규모 봉기를 일으켜지만 결국 1년 만에 진압당한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러시아]]는 [[러시아 혁명|혁명]]으로 인하여 혼란에 빠지고, 폴란드는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1918년]]에 독립하게 된다. 당시 폴란드는 러시아의 혼란을 틈타 옛 [[폴란드 왕국]]의 영토였던 서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등을 되찾으려 하였고, 이로 인해 [[소비에트 연방]]과 전쟁이 시작되었다.
 
[[1572년]] 폴란드에서는 [[야기에우워 왕조]]({{llang|pl|Jagiellonowie}})가 끝나고, 귀족들이 국왕을 선출하는 귀족 민주정이 실시되었다. 그러나 폴란드는 [[스웨덴]]과 전쟁, [[모스크바 대공국]]의 마찰 등으로 인해 국력이 쇠퇴한다. 이러한 정세 속에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러시아]]의 간섭이 시작되었고, 결국 [[1772년]]에 이들 세 나라에 영토를 빼앗기기 시작하다가, [[1795년]]에 최종적으로 완전히 분할된다. 폴란드인들은 [[1830년]]에 대규모 봉기를 일으켜지만 결국 1년 만에 진압당한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러시아]]는 [[러시아 혁명|혁명]]으로 인하여 혼란에 빠지고, 폴란드는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1918년]]에 독립하게 된다. 당시 폴란드는 러시아의 혼란을 틈타 옛 [[폴란드 왕국]]의 영토였던 서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등을 되찾으려 하였고, 이로 인해 [[소비에트 연방]]과 전쟁이 시작되었다.
 
== 전쟁의 진행 ==
=== [[1919년]] ===
폴란드군은 [[프랑스]]과 [[영국]]의 지원을 받고 동부전선에 총 23만명을 배치했다. [[1919년]] 2월에 한때 적군에 잠시 밀리기도 했으나 [[네만강네만 강]]에서 벌어진 결전에서 결국 승리하였고, [[빌뉴스]]에서 전투를 해 10월까지 [[드비나강|드비나 강]]까지 진격하였다.(이때 [[리투아니아 독립 전쟁]], [[라트비아 독립 전쟁]]도 같이 벌어짐.)
 
[[1919년]] 12월까지 폴란드군의 전시 상황은 순조로웠지만 사실상 구 러시아 영토였던 점령지와, 연합국 간섭 등의 문제로 간섭 전쟁의 형태를 띠게 된다. 평화 협정도 진행하고 있었으나 폴란드 정치인과의 마찰로 인해 협정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리투아니아는 더욱 상황이 악화되었기 때문에 결국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과 연합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