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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신라의 역대 국왕|신라의 제18대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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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성 이사금'''(實聖 泥師今,
원년인 [[402년]] 음력 3월 [[왜]]와 우호를 맺고 [[미사흔]](未斯欣)을 볼모로 보냈다.<ref>{{서적 인용 |제목= [[삼국사기]] | 저자= [[김부식]] |연도= 1145 |장= [[:s:삼국사기/권03/실성 이사금|본기 권3 실성 이사금]] |인용문= 元年 三月 與倭國通好 以奈勿王子未斯欣爲質(원년 3월에 왜와 우호를 통하고, 내물왕의 아들 미사흔(未斯欣)}을 볼모로 삼았다. )}}</ref> [[403년]] 음력 7월 [[백제]]가 침입했으나 기록이 자세하지 않다. [[405년]] 음력 4월 왜가 침입해 명활성을 공격했으나 깨트리지 못했고, 이사금이 기병을 거느리고 퇴로를 막아 3백여 명의 왜군을 죽이거나 사로잡았다.<ref>{{서적 인용 |제목= [[삼국사기]] | 저자= [[김부식]] |연도= 1145 |장= [[:s:삼국사기/권03/실성 이사금|본기 권3 실성 이사금]] |인용문= 四年 夏四月 倭兵來攻明活城 不克而歸 王率騎兵 要之獨山之南 再戰破之 殺獲三百餘級 (4년 여름 4월에 왜의 군사들이 와서 명활성(明活城)을 공격하였으나 이기지 못하고 돌아갔다. 왕이 기병을 이끌고 독산(獨山)의 남쪽 길목에서 기다려 다시 한 번 그들을 격파함으로써 300여 명을 죽이거나 사로잡았다. )}}</ref> 왜는 [[407년]] 음력 3월과 6월에 동쪽과 남쪽으로 다시 침입하여 노략질을 해 일백여 주민들이 피해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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