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로보암: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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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보암은 느밧과 과부 [[스루아]]의 아들로 스레다 출신의 에브라임 사람이었다. [[솔로몬 왕]]이 밀로 궁을 건설하고 다윗 성의 갈라진 틈을 보수할 때 솔로몬은 여로보암이 강한 용사일 뿐 아니라 열심히 일하는 것을 보고 그를 요셉의 집의 강제 노역의 감독자로 임명하였다. 그때 예루살렘으로 가다가 예언자 [[아히야]]를 만나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갈라질 것을 예언했다. 이 이야기가 솔로몬 왕에게 알려져 죽을 것을 알고 [[이집트]]의 왕 [[셰숑크 1세|시삭]]에게로 도망쳤다.
 
== 왕이 되다즉위 ==
기원전 998년경에 솔로몬 왕이 죽자 여로보암은 이집트에서 돌아와 10지파의 지지를 받아 [[이스라엘 왕국|북왕국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여로보암은 에브라임 산악 지방에서 살다가 세겜을 세우고 거기서 살다가 다시 나와 브누엘(브니엘) 세웠다. 그런데 북이스라엘 백성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제사드리고 결국은 자신을 다시 배신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고 베델(Bathel)과 단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백성들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못하게 했으며 사제는 레위 사람들이 아닌 일반 백성들을 임명하였다. 또한 여덟째 달 십오일을 절기로 정해서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만들었으나 결국은 온 민족을 우상 숭배의 길로 이끌었다(열왕기상 12:3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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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악 ==
[[구약 성서]]에 의하면 이런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로보암을 악한 일에서 돌아서지 않고 계속 일반 백성들을 산당의 사제로 임명하였고 원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산당의 사제가 되게 하였다. 이로 인해 하느님께서 그를 버려 [[유다 왕국|남왕국 유다]]와 전투를 벌일 때 크게 패배하여 생전에 그 패배를 회복하지 못했다.
 
그때 여로보암의 아들 [[아비야]]가 병이 들었고 여로보암의 아내는 하느님 사람에게서 이에 대한 경고와 예언을 들었고 타르차로 돌아와 집 문지기 방에 들어서자마자 아비야가 죽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