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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 말기에 일어난 황위 계승 다툼은 엄청난 규모의 내란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서진은 황족을 왕으로 봉하며 독자적으로 군대를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고, 그 결과 황위 계승권과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왕이 여럿 존재하였다. 8명의 왕들이 자신들의 군대를 거느리고 전투를 벌인 이 내란을 [[팔왕의 난]]이라 부른다. 팔왕의 난은 [[306년]]에 끝났지만, 이로 인하여 서진의 국력은 크게 쇠퇴했고, 8왕의 난 당시 왕족들이 전투를 위해 중국 내지에 정착해 살던 이민족을 용병으로 고용함으로써 이들의 입지는 매우 커지게 되었다.
 
이때 흉노족의 [[유연 (전조)|유연]](劉淵)이 서진의 쇠퇴를 호기로 삼아 [[304년]] 병주(并州 ; 지금의 산서성)에서 자립해 한(漢)을 세웠다. 같은해 사천(四川)에서도 [[이웅]](李雄)이 자립하여 [[성한]](成漢)을 건국하였다. 감숙(甘肅) 지방에서도 서진의 양주자사였던 [[장궤]](張軌)가 독립적인 정권 [[전량]](前凉)을 세웠으며 탁발부는 [[대나라|대]](代)를 건국하였다. 이로써 오호십육국시대가 시작되었다.
 
유연은 갈족 출신의 석륵과 한인 출신 장군 [[왕미]](王彌)를 시켜 병주 일대를 공략하고, [[308년]] 황제를 칭했으나, [[310년]]에 죽고 아들 [[유화 (흉노)|유화]](劉和)가 이를 계승하였다. 유화는 인망이 없어 동생 [[유총]](劉聰)이 제위를 찬탈했다. 유총은 [[311년]]에 [[낙양]](洛陽)을 함락하고 [[서진 회제]](懷帝)를 붙잡았다. 이것을 [[영가의 난]]이라고 부른다. 그 후 [[장안]](長安)에서 [[서진 민제|민제]](愍帝)가 옹립되었으나, [[316년]]에 유총에게 패하여 서진은 완전히 멸망하였다. 이에 서진의 왕족이었던 [[사마예]]가 남쪽의 [[건업]](建業)에서 진을 재흥시키니 이 나라를 [[동진]](東晉)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은 유총 사후 후계자 쟁탈전에서 [[유요 (전조)|유요]](劉曜)가 승리하여 즉위하였으며 국호를 조(趙)로 고쳤다. 그러나 하북 정벌에 나섰던 석륵이 자립하여 하북·하남·산동을 장악하여 낙양을 경계로 유요 정권과 화북을 양분하게 되었다. 석륵 또한 국호를 조(趙)라고 하였기 때문에 구분하기 위해 유요 정권은 전조, 석륵 정권은 [[후조]](後趙)라고 불렀다. [[328년]] 유요가 낙양을 탈환하기 위해 출병했으나, 석륵의 조카 [[석호 (후조)|석호]](石虎)에게 대패하여 포로가 된 뒤 살해당하니, 전조는 국력이 쇠퇴하여 후조에게 멸망하였다.
 
화북 대부분을 장악한 후조에서는 [[333년]] 석륵이 죽고 [[석홍]](石弘)이 즉위했으나 석호가 그를 폐위하고 스스로 즉위했다. 석호는 매우 포악하고 잔인하여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석호는 수도를 업(鄴)으로 옮겼고, 이 시기가 후조의 최전성기였다. [[349년]]에 석호가 죽자 석륵의 양자 석민(石閔)이석민이 경쟁자를 제거하고 즉위하였다. 석민은 이후 본래 성인 염씨(冉氏)로 돌아가고 [[염위]](冉魏)를 세웠다. (염위는 워낙 단명한 왕조라 16국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후조는 [[351년]]에 염위에 의해 완전히 멸망하였다. 염위는 이민족에 대한 복수를 감행하였고 다수의 한인이 갈족을 상대로 대량의 학살을 벌였다.
 
한편, [[337년]] 요서(遼西)에 근거지를 둔 모용부가 [[모용황]](慕容皝)을 중심으로 [[전연]](前燕)을 세우고, [[349년]] 이후 후조 멸망의 혼란을 틈타 중원에 진출하였다. 전연은 [[352년]]에 염위를 멸망시켰으며, 같은 시기 섬서(陝西) 지방에서 저족의 [[부건]](苻健)이 장안에서 [[전진 (오호십육국)|전진]](前秦)을 건국([[351년]])하였다.
 
화북이 혼란해지자 동진의 실권자 [[환온]](桓溫)은 [[347년]], 성한을 멸망시켜 촉(蜀) 지역을 장악하고 북벌을 감행하여 전진을 공격하였으나 패퇴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전진의 국력이 증가해 [[360년]]에는 화북을 전연과 양분하였다. 부건의 뒤를 계승한 [[부견]](苻堅)은 뛰어난 인물로 한인 [[왕맹]](王猛)을 등용해 국력을 키우며 대대적인 정벌로 각 나라를 정벌해 [[376년]] 화북을 완전히 통일하였다.
 
[[383년]] 부견은 천하를 통일하기 위해 동진 정벌을 계획하여 100만이라 부르는 대군을 이끌고 남하하였다가 [[비수의 전투]]에서 동진군에게 대패한다. 이 전투의 패배로 전진의 국력은 단번에 쇠퇴하고, 각 민족이 제각기 독립하기 시작했다. 하북·하남·산동 일대에는 [[후연]](後燕)이 건국되고, 병주에는 대(代 ; [[북위 (북조)|북위]](北魏))와 [[서연]](西燕)이 세워졌다. 섬서에는 [[후진 (십육국)|후진]](後秦)과 [[서진]](西秦)이 생겼고, 감숙에는 [[후량 (십육국)|후량]](後凉)이 태어났다. 그 외에도 감숙 지방에는 여러 민족에 의해 약소국가들이 할거하였다.
 
이들 가운데 [[모용수]](慕容垂)의 후연과 [[요장]](姚萇)의 후진이 가장 강력했다. 후연은 서연을 멸망시키고, 후진은 전진을 멸망시켜 영토를 확대하였고 다시 화북을 동서로 양분하였으나, 탁발부의 북위와 흉노의 [[혁련발발]](赫連勃勃)이 건국한 하(夏)가 이들을 누르고 강대해졌다. [[395년]]에 북위에 패배한 후연은 [[남연]](南燕)과 [[북연]](北燕)으로 분열되었고, 대부분의 영토를 북위에게 빼앗겼다. 후진 또한 하에게 공격을 당해 영토를 빼앗기다가 [[417년]] 동진의 [[유유]](劉裕)에게 멸망당했다. 유유는 [[410년]]에 남연도 멸망시켰고, 그 공적으로 선양을 받아 [[송 (남조)|송]](宋)을 건국한다.
 
하는 유유가 물러간 뒤 장안을 탈취해 북위와 함께 화북을 양분했으나, [[427년]] 북위에게 패한 뒤 쇠퇴를 거듭하다 [[431년]]에 멸망당하고, 북위는 [[436년]]에 북연을, [[439년]]에 [[북량]](北凉)을 멸망시켜 화북을 통일하니 이로써 오호십육국시대는 끝나고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가 시작되게 되었다.
 
== 오호십육국시대의 사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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