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학파: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잔글편집 요약 없음
잔글편집 요약 없음
7번째 줄:
빈 학파의 철학적 입장은 [[논리실증주의|논리 실증주의]]로 불린다. 이는 [[에른스트 마흐]], [[다비트 힐베르트]], 프랑스 컨벤셔널리즘, [[고틀로프 프레게]], [[버트런드 러셀]],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빈 학파는 다원주의자였으며, [[계몽주의]]의 사상에 충실하였다. 이들의 목표는 철학을 현대적 [[논리학]]의 도움으로 과학적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모임의 주요 주제는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논리학과 수학, 현대적 논리학에 의한 [[경험론]]의 현대화, 의미에 대한 경험론적인 기준을 위한 연구, [[형이상학]]에 대한 비판, 통일과학(unity of science) 안에서의 과학의 통일이었다. 
 
빈 학파는 다양한 서적 출판과 [[쾨니히스베르크]], [[프라하]], [[파리 (프랑스)|파리]], [[코펜하겐]], 영국 [[케임브리지]], 미국 [[케임브리지 (매사추세츠 주)|케임브리지]]에서의 국제 콘퍼런스 개최로 대중에 모습을 드러냈다. 대중적인 활동은 어니스트 마흐 학회라는 이름으로 하였는데, 빈 학파의 일원은 에른스트 마흐 학회를 통하여 빈에서 국가적 교육을 위한 프로그램의 맥락에서 그 들의그들의 사상이 대중화되는 것을 추구하였다. 
 
오스트리아 권위주의 시대(Austrofascism) 동안과, 나치 독일에 의한 [[오스트리아 병합]] 이후에 대부분의 일원이 망명을 강요받았다. 이전 제자에 의해 1936년 슐리크가 살해당하자 오스트리아에서의 빈 학파는 종말을 맞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