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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사 ==
대한민국의 정치사는 험난한 여정의 연속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1919년 3.1 운동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포함해 여러 독립 운동 세력들이 치열한 독립 운동을 전개 하였으나 "자유시 참변" 이후 역량은 많이 쇠퇴한 상황이었다. 임시정부의 경우 "[[한국 광복군"]]을 조직하여 연합군에 참여해 보려 하였으나 한줌도일본의 안되는이른 권력다툼패망으로 속에[[국내 인원도진공 극소수일작전]]을 수행하지 아니라 실제 일본군과 전투 기록은 전무했다.못하였고, 공산계 포함 국외의 망명단체나 조선 내부적으로 독립을 쟁취할 역량은 부족했고 연합군(정확히는 미국과 소련)의 공세에 의해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함으로써 해방을 맞이한다. 이후 들어온 미·소 양 국가는 한반도를 분할하여 한국에 정부가 세워지기 전까지 통치하였으며 이는 결국 남북에 두 개의 정부가 세워지게 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결국 [[한국 전쟁]]이 일어나고야 만다. 전후에는 정치, 경제가 모두 혼란에 빠졌다. 이후 군부 독재가 시작되며 경제는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기는 하나, 정치적으로는 계속 억압된 상태였기 때문에 민중의 민주화 요구는 계속되었다. 결국엔 군부가 물러나고, 민간인 대통령이 들어오면서 민주화에 시동을 걸었으며 경제적으로도 IMF 위기라는 어려움을 겪었으나 어려움을 극복하고 지속적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 대한민국 건국정부 수립 초기부터 전두환 정권 시절까지 정치적인 목적으로 계엄령을 자주 선포하였고, 정부가 약화될 때마다 군부에 의한 쿠데타가 발생하였다. 독재 정권 하에서는 민주주의가 올바르게 정착되지 못하였다. [[전두환]] 정권 시기에는 대통령 간접선거제도를 채택하고, [[광주민주화운동]]과 같은 민주화 요구에 대해 가차없는 탄압이 자행되었다. 각계 각층의 대중들이 참여한 [[1987년]] [[6월]]의 민주 항쟁으로 대통령 직접선거제도를 공약한 [[6.29 선언]]을 이끌어 내어 이후 민주화가 상당히 진전되었다.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시대에 따라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다.<ref>조동걸, 《한국사》, 국사편찬위원회, 2002</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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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공화국 ====
{{본문|대한민국 제1공화국}}
[[대한민국 제1공화국|제1공화국]]은 [[1948년]] [[7월 17일]]에 제정된 [[헌법]]에 의해 같은 해 [[8월 13일]]에 수립되어 [[1960년]] [[4·19 혁명]]으로 붕괴되기 전까지의 시기로 [[대한민국]] 최초의 공화 헌정 체제이다. 집권 여당은 [[자유당 (대한민국)|자유당]]이다. [[1948년]] [[유엔]](UN)의 결의에 따라 남한에서만 5·10 총선거가 실시되어 [[대한민국 제헌 국회]]가 구성되고 [[자유민주주의]] [[공화국]] 체제의 헌법이 제정되었다. 이어 [[8월 15일]] 대한민국 제헌 국회에서 간접 선거 방식으로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승만]]이 정부를 구성하고 [[대한민국]]의 건국과구성하여 [[대한민국 제1공화국|제1공화국]] 정부 수립을 국내외에 선포하였다.
 
정부수립 초기에는 국내 질서 확립과 [[일제 강점기]]의 잔재 청산이 시급한 과제였다. 이승만 정부는 반공 정책 강화와 농지 개혁 등을 통해 [[미군정]] 시의 혼란을 극복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정부 수립을 전후 한 시기에 [[좌익]]과 [[우익]] 간의 대립이 격화되어 [[제주 4·3 항쟁]]과 [[여순 14연대 반란사건]]이 연달아 일어났고 그에 따른 혼란은 여전하였다. 이승만 정부는 이러한 좌익과 우익 간의 갈등을 극복하고 사회 질서를 확립한다는 명분으로 [[국가보안법]]제정, [[반공주의]] 정책을 내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