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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정치인 정보
|이름 = 이기택
|그림 =
|출생일 = {{출생일|1937|7|25}}
|출생지 = [[경상북도]] [[영일군]] [[지행면]]<br/>(현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포항시)|남구]] [[장기면 (포항시)|장기면]])
|사망일 = {{사망일과 나이만나이|2016|2|20|1937|7|25}}
|사망지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동]] [[서울성모병원]]
|사망원인 =
 
==== 5공, 6공 시절 ====
신군부 집권 이후 정치규제에 묶여 제11대 국회에서는 출마하지 못하였지만 도미, [[미국]]으로 건너가 [[1982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 객원교수 등을 지냈다. 그 뒤 구정치인 정치활동 규제가 풀리자 [[1985년]] [[대한민국 12대 총선|12대 총선]]에서 부산 [[해운대해운대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때 정치규제에 묶여 일선에 나설 수 없었던 양김씨를 대신하였지만 실권이 별로 없던 [[이민우 (1915년)|이민우]] 신민당 총재 아래에서 부총재를 역임하였다.
 
[[1987년]] 신민당이 내세운 직선제와 여당인 [[민주정의당]]이 내세운 내각제 사이에서 개헌논의에 진척이 없어 정국이 파국으로 치닫자, 민주화 조치가 이루어지면 내각제 개헌도 무방하다던 이른바 "이민우 구상"을 둘러싸고 야당내에 갈등이 증폭되었다. 그리하여 이민우를 비롯한 신민당 내의 대여타협파와 결별하기 위해 양김씨가 자신의 계파의원들을 모두 신민당에서 탈당시켜 새로이 [[통일민주당]]을 창당하였다. 이때 이기택은 소속 계보 의원들과 함께 신민당을 탈당하였지만 [[통일민주당]]에 참여하지는 않았다. 이후 [[전두환]]이 4.13호헌조치를 발표하자 이에 항의하여 15일간 단식하였다. 신민당 부총재 이후 통일민주당 부총재 등을 지냈다.
[[분류:대한민국 제3공화국]]
[[분류:대한민국 제4공화국]]
[[분류:새누리당 당원]]
[[분류:대한민국의 반공주의자]]
[[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운동가]]
[[분류:부산상업고등학교 동문]]
[[분류:고려대학교 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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