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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군|단양]](丹陽)과 [[안동시|안동]](安東)의 왜구를 몰아낸 뒤 원천부원군(原川府院君)에 봉해지고 판삼사사(判三司事), 뒤에 영삼사사(領三司事)가 되었다.
 
=== 황산대첩(우왕 6년, 1380) ===
우왕 2년([[1376년]])에는 추충양절선위익찬보조공신(推忠亮節宣威翊贊輔祚功臣)로서 도순찰사(都巡察使) 이성계, 류실 등과 함께 운봉(雲峰), 황산(荒山), 부령(扶寧) 등지에서 왜적을 대파하고 개선한 뒤, 정방제조(政房提調)가 되어 그 세력이 [[임견미]](林堅味)·[[이인임]](李仁任) 등과 겨룰 만큼 커졌다. 우왕은 황산 전투에서 크게 전공을 세운 변안렬과 이성계에게 금 50냥씩, 왕복명 이하 여러 장수들에게는 은 50냥씩을 주었으나, 모두 다 사퇴하면서 말하기를 "장수가 적을 격멸하는 것은 그 직책인데 우리가 어찌 그것을 받겠는가?"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