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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우스 수에토니우스 트란퀼리우스는 히포 레기우스(지금의 [[안나바]]) 출신으로 수에토니우스 라에투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라에투스는 기사(에퀴테스)에 속하며 내전 시대에는 [[오토]] 휘하에 있었고, [[69년]] 게르마니아 스베리올 속주 총독이던 [[비텔리우스]]와의 전투에도 종군했다.
 
90년대부터 수에토니우스는 로마에서 변호사로 활동하였는데, 원로원 의원으로 역사가가 된 소(小)플리니우스와도 친분이 있었다. 플리니우스는 수에토니우스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했고 문필에 일가를 이룬 인물이라고 기록을 남겼다. 소 플리니우스는 수에토니우스가 이탈리아의 소규모 부동산을 구입할 때도 미혼에 자식이 없었던 수에토니우스에게 면세 특권(통상 아들 셋을 둔 아버지에게 인정되었다)을 인정해주도록 [[트라야누스]] 황제와의 사이에서 주선에 나서는 등 협력했다. 플리니우스를 통해서 수에토니우스는 트라야누스, 그리고 [[하드리아누스]]와도 친해졌다.
 
또한 [[110년]]부터 [[112년]]까지 수에토니우스는 소 플리니우스가 [[비튀니아]]와 [[폰투스]] 두 속주의 프로콘술로 부임할 때에 수행하였다. 트라야누스의 치세 때에는 몇 번이나 비서관(秘書官)과 공문서관(公文書館)의 감독 업무를 맡고 있었다. 그러나 [[112년]]에 수에토니우스는 하드리아누스의 황비(皇妃) 사비나에 대한 불경한 태도가 문제가 되어 해임되었다. 수에토니우스의 해임은 현재는 하드리아누스의 행정 개혁을 반영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122년]] 이후 하드리아누스가 수에토니우스를 다시 직무에 기용했다는 기록은 없다.
 
수에토니우스의 사망 시기는 확실하지 않고 [[130년]] 이후로 여겨지고 있다.
 
== 저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