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티슬라프 2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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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5년]] 자신의 아버지였던 [[브르제티슬라프 1세]]가 사망한 이후에 [[모라바]]의 [[올로모우츠]] 공작으로 즉위했지만 자신의 형이었던 [[스피티흐네프 2세]] 공작과의 분쟁으로 인해 [[헝가리]]로 망명했다. 그렇지만 헝가리의 지원을 받으면서 올로모우츠 공작으로 복귀했고 형과 화해하게 된다.
 
[[1061년]] 자신의 형인 스피티흐네프 2세가 사망한 뒤에 [[프라하]]에서 [[보헤미아]]의 공작으로 즉위했다. [[1063년]]에는 모라바 주교구를 설립했지만 프라하 주교를 역임하고 있던 자신의 동생인 야로미르와야로미르(Jaromír)와 갈등을 빚게 된다. [[1070년]]에는 [[작센 주|작센]] 공작 마그누스(Magnus), [[노르트하임]](Northeim) 공작 오토(Otto)가 반란을 일으켰고 [[1071년]]에는 폴란드의 공작인 [[볼레스와프 2세]]가 보헤미아를 침공했다. 브라티슬라프 2세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였던 [[하인리히 4세]]의 지원을 받으면서 폴란드 군대를 물리쳤다.
 
[[1081년]]에는 하인리히 4세가 [[교황 그레고리오 7세]]를 추방시키기 위해 일으킨 [[이탈리아]] 원정에 참여했으며 [[1083년]]에는 브라티슬라프 2세가 이끄는 보헤미아 군대가 [[로마]]에 입성했다. 하인리히 2세를 지지했던 브라티슬라프 2세는 교황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수립하기 위해 슬라브식 [[전례]]를 요청했지만 교황은 이를 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