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에로니무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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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aeho (토론 | 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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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히에로니무스의 가장 큰 업적은 391년부터 406년까지 계속된 성경의 라틴어 번역이었다. 391년부터 신약성경을 그리스어에서 라틴어로 직접 번역하고, 구약성경의 경우에는 처음에는 신약과 마찬가지로 그리스어 70인역에서 번역하였으나, 3차 번역에서 히브리어 원문에서 라틴어로 직접 번역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70인역"(Septuaginta)을 배척하는 유대인 랍비들과 토론을 벌이면서 새로 번역하였다. 406년까지 계속된 작업으로 번역된 라틴어 성경은 13세기 이후 널리 쓰이는 번역본이라는 의미에서 '{{lang|la|versio vulgata}}'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이를 줄여 불가타판이라 한다. 불가타판은 원문에 매우 충실하고 정확한 번역일 뿐만 아니라 대중이 쉽게 읽을 수 있는 라틴어로 되어 있었으므로 5세기 이후 기독교 사회에서 널리 보급되었으며, 1546년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로마 가톨릭교회는 불가타판 번역을 공식적인 성경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이 와중에 교회와의 갈등도 있었으니, 이른바 [[외경]]이 그것이다. 히에로니무스는 70인역에는 있지만 [[타나크]]라고 하는 히브리어 원전에는 있지만 70인역에는 없는 몇몇 문헌들에 대해 동방교회 교부들의 입장에 따라서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였다. 불가타 성경의 번역시 그는 [[타나크]]만 번역하고, [[외경]]들은 번역을 회피하였다. 하지만 내외적으로 번역의 압력이 가중되자, 그는 마지못해 외경들을 번역하면서, '''교회의 책'''이라고 [[정경]]과 구분하여 언급하였으며, [[불가타 성경]] 서문에 교회의 책들에 대하여 '읽어서 신앙에 유익하지만 교리를 도출하면 안된다'라고 하여 동방교회 교부들의 관점에 동조하였다.
 
== 출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