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키 사오리"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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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마 현 기류 시에서 태어났지만 세 살 무렵부터 [[요코하마 시]]에서 살았다. 소녀 시절부터 언니 사치코와 함께 본명으로 [[동요|동요 가수]]로서 활동했다. 1965년 [[킹레코드 (일본)|킹 레코드]]에서 〈히치하이크 아가씨〉라는 노래를 내며 [[카요쿄쿠|가요]]로 분야를 확장하지만, 전혀 성공하지 못했으며 이후로 두드러지는 활동은 없었다.
 
1969년 [[EMI 뮤직 재팬|도시바음악공업]]에서 "유키 사오리"라는 이름으로 데뷔 싱글을 다시 냈으며, 이 싱글의 이름은 〈[[새벽의 스캣]]〉이었다. 원래는 싱글로 발매하려는 곡은 아니었고, 라디오 프로그램의 삽입곡에 불과했지만 청취자들의 문의가 끊이질 않아 싱글 제작으로 발전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싱글은 결국 대성공을 거둬, 150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밀리언 셀러가 되었다. 그해 연말에는 [[제20회 NHK 홍백가합전]]에 처음으로 출연했으며, 이 프로그램에 1978년까지 10년 연속으로 출연하게 된다. 이듬해인 1970년에 발표한 곡 〈[[편지 (유키 사오리의 노래)|편지]]〉 역시 6주 연속 1위를 기록하며 큰 성공을 거뒀으며, 제12회 일본레코드대상에서는 가창상까지 수여받았다. 이후로도 수많은 히트곡을 만들어냈으며, 1973년에 발표한 〈[[연문]]〉({{해석|연애 편지}})으로 제15회 일본레코드 대상에서 최우수가창상을 다시 수상했다.
 
이듬해인 1970년에 발표한 곡 〈[[편지 (유키 사오리의 노래)|편지]]〉 역시 6주 연속 1위를 기록하며 큰 성공을 거뒀으며, 제12회 일본레코드대상에서는 가창상까지 수여받았다. 이후로도 수많은 히트곡을 만들어냈으며, 1973년에 발표한 〈[[연문]]〉({{해석|연애 편지}})로 제15회 일본레코드 대상에서 최우수가창상을 다시 수상했다.
 
가수로 활동하는 한편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도 출연하며 연예인으로서의 활동폭을 넓혔는데, 특히 코미디에 재능을 보였으며, 가령 [[후지 TV]]에서 방영되던 《드립 대폭소》({{lang|ja|ドリフ大爆笑}}) 같은 경우에는 가장 많이 출연한 게스트가 되기도 했다. 이후로 멀티 엔터테이너로서 활동하며 1983년에 이르면 [[마츠다 유사쿠]] 주연의 《[[가족 게임#영화|가족 게임]]》에서 시게유키의 어머니 역을 맡아 [[일본 아카데미상]]에서 우수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며 재능을 인정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