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세 (영화 감독):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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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세'''([[1957년]] [[8월 21일]] -~ )는 [[대한민국]]의 [[영화]] 감독이다. [[서울예전]] 영화과를 졸업하고 [[1979년]] 영화계에 입문했다. 여러 감독의 영화에서 조감독을 맡다가 [[1988년]] 영화 《[[개그맨 (영화)|개그맨]]》으로 감독 데뷔했다. 장난스럽거나, 지나치게 세련된 영상을 추구하는 스타일리스트로 알려져 있다.
{{다른 뜻 설명|일제 강점기의 유림 [[이명세 (1893년)|이명세]](李明世)도 있다.}}
'''이명세'''([[1957년]] [[8월 21일]] - )는 [[대한민국]]의 [[영화]] 감독이다. [[서울예전]] 영화과를 졸업하고 [[1979년]] 영화계에 입문했다. 여러 감독의 영화에서 조감독을 맡다가 [[1988년]] 영화 《[[개그맨 (영화)|개그맨]]》으로 감독 데뷔했다. 장난스럽거나, 지나치게 세련된 영상을 추구하는 스타일리스트로 알려져 있다.
 
[[1990년]] 두번째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가 흥행에 성공하였으나, 이후 계속 흥행에 실패하다가 [[1999년]] 형사물을 미려한 스타일로 그려낸 《인정사정 볼것없다》로 다시 주목을 받았다. 이 영화는 국내외 비평가들에게 호평을 받았으며 흥행에도 성공한다. 그 후 미국 영화계로 진출하여 감독 데뷔를 위한 작업을 준비했으나, 이렇다할 결과물은 내지 못한 채 한국으로 돌아와서 《[[형사]]》를 감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