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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기가 되자 꼭두각시 집단은 직능별로 분산 정주했으며, 14세기에 와서 '꼭두각시'는 이미 집단민을 지칭하는 말은 아닐 정도로 달라졌고, [[무로마치 시대]]에 들어와서부터는 '손꼭두각시'가 배출되어, [[원악]](猿樂)을 상연한다든지 고와카(幸苦)의 구세마이(曲舞)를 상연했다. 16세기 중엽경부터는 사이구쥬신사(西宮戎神社)와의 유대가 생겨서 직능 조직을 만들고, 이른바 '에비스 돌리기(惠比須回)'라 칭하는 극단이 다시 결성되어, 각지를 순회하게 되었고, 불사(佛寺)와 결합한 '불상돌리기'도 발생하였다. 이 밖에 조그만 상자무대를 가슴에 걸고 인형을 조종하는 순회예능(巡廻藝能)도 생겼다. 17세기 초엽, [[분로쿠]](文祿)·[[게이초]](慶長) 시대에는 '에비스 돌리기'의 인형이 당시 새로 일어난 이른바 '가타리모노'로서 유행한 '[[조루리]]'와 손잡고 '닌교조루리'가 시작되었다.
 
변사인 다유(太夫)로는 다케모토 기다유(竹本義太夫), 작가로는 [[지카마쓰 몬자에몬]](近松門左衛門)과 기노 가이온 등 걸출한 인물들에 의하여 발전되기 시작한다. 한 때는 [[가부키]]를 뛰어넘는 인기를 구가하기도 하였으며, 또한 같은 공연 예술인 [[가부키]]에도 여러가지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에도 야구라시타(櫓下;최고의 다이후에게 붙는 호칭)는 이치가와 단주로<ref>유명한 가부키 가문의 무대명(Stage name)</ref>보다 일본전통예술에서 차지하는 비중 또는 지위가 높다고 한다. 많은 가부키가 닌교죠루리의 번안작이다. 그 후 히라가 겐나이에 의해 에도조루리가 발생하였다. 이 무렵(간세 시대([[1789년]] ~ [[1800년]]) 닌교죠루리는 가부키에 밀려 쇠퇴일로에 있었는데, 아와지사마 출신의 제1대 우에무라 분라쿠켄이 지금의 [[오사카 시]] [[주오 구 (오사카 시)|주오 구]]에 극장을 만들면서 부흥시킨다. 이 극장은 1872년 제3대 우에무라 분라쿠켄의 시대에 오사카 시 마쓰시마에 옮겨져 이름을 분라쿠자로 명명한다. 메이지 말기까지 이 분라쿠자가 유일한 닌교죠루리 전문극장으로 남았기 때문에 분라쿠가 닌교조루리의 대표적인 존재로 인식되기에 이른다.
 
== 공연 양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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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ity control}}
 
[[분류:분라쿠| ]]
[[분류:인형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