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장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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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7세기, [[송 (춘추 전국)|송나라]]에서는 [[송 장공|송장공]]에 이어 아들 [[송 민공 (첩)|송민공]](宋湣公)이 군위에 올랐고,<ref name="s14">사마천: 《[[사기]]》 권14 12제후연표{{위키문헌|:zh:史記/卷014|사기 권14 12제후연표}}</ref> [[제 (춘추 전국)|제나라]]에서는 [[기원전 685년]]에 [[제 환공|제환공]]이 공자 규(糾)를 물리치고 군위에 올랐으며,<ref name="s14"/> 규를 후원한 [[노 장공]]도 무찔렀다.<ref>정태현: 《역주 춘추좌씨전》 1, 380쪽, ISBN 89-85395-72-6 94140</ref> [[기원전 684년]], 봄에 제나라가 노나라를 공격했다가 패하자, 송나라는 제나라와 연합하여 노나라를 공격했으나 승구에서 대패했다.<ref>위와 같음, 383 ~ 388쪽</ref> 이때 남궁장만은 노나라 [[노 장공|장공]]이 쏜 활에 맞고 장공의 차우 천손(歂孫)에게 생포되어 노나라에서 죄수 신분이 되었다. 노나라 장공은 이듬해에 송나라의 청으로 남궁장만을 송나라로 돌려보냈다. [[송 민공 (첩)|송민공]](宋湣公)은 돌아온 남궁장만에게 [[노 (춘추 전국)|노나라]] 죄수라는 농담을 했고, 남궁장만은 이 때문에 원한을 품었다.<ref>위와 같음, 393 ~ 394쪽</ref>
 
[[기원전 682년]] 남궁장만은 송민공과 함께 여인을 끼고 장기를 두다가 노장공을 찬미했고, 송민공은 시샘이 나서 또 남궁장만을 노나라 포로라고 놀렸다. 남궁장만은 분노해 송민공을 박살하고 정강이를 끊었다. 대부 [[구목]]이 자신의 시역을 꾸짖자, 구목을 손바닥으로 후려갈기니 머리가 부서지고 이가 문지방에 닿았다.<ref>공양고: 《춘추공양전》 장공 12년{{위키문헌|:zh:春秋公羊傳/莊公|춘추공양전 장공}}</ref> 가을 갑오일, 남궁장만은 몽택(蒙澤)에서 송민공을 시해하고 구목도 죽이고 재상 [[화독]]도 죽이고 [[송자 유]]를 새 임금으로 세웠다. 송나라의 여러 공자들은 소(蕭)읍으로 달아났고, 나중에 [[송 환공]]이 되는 공자 어열은 박(亳)읍으로 달아났다. 남궁장만은 아들 남궁우(南宮牛)와 맹획(猛獲)을 보내 박읍을 포위했으나, 소읍의 대부와 여러 공자들이 박을 포위한 남궁우와 맹획을 무찌르니 남궁우는 살해되고 맹획은 패주해 [[위 (춘추 전국)|위나라]]로 망명했다. 남궁장만은 어머니를 수레에 태우고 하루 만에 진(陳)나라로 달아났으나, [[진 (춘추, 陳규성)|진나라]]는 새로 송나라 임금이 된 송 환공의 청을 받아 남궁장만을 사로잡아 송나라로 보내기로 했다. 남궁장만은 진나라의 계략에 빠져, 여자를 끼고 술에 취한 중에 사로잡혀 [[무소]] 가죽 부대에 넣어져 송나라로 압송되어 사형을 당했다고 한다.<ref>정태현: 전게서, 394 ~ 346쪽</ref>
 
== 각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