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노예: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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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시대]] [[영국]]에서는 선거운동 언론인이자 《[[펠 멜 가제트]]》의 편집장 [[윌리엄 토머스 스테드]]가 당시 노동자 한 명의 한 달 임금 총액과 맞먹는 5파운드에 13세 소녀 한 명을 매수한 사건이 일어났다. ([[엘리자 암스트롱 스캔들]]을 참조하라.) ‘여성 불법 매매’에 대한 [[모럴 패닉|공황]]은 1880년대 영국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당시 백인 노예는 공중도덕과 개혁운동에 나선 이들의 타도 제1순위였다. 영국 전역에서 전국적인 항의가 잇따르면서 결국 영국 의회에서 노예제도 반대법을 제정하여 통과시키기에 이르렀다.
 
20세기 초엽인 1910년 [[미국]]에서는 시카고 연방검사가 국제범죄조직이 [[유럽]]의 소녀들을 유괴해서 [[시카고]]의 매음굴에 보내 윤락 행위를 강요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발표하면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왔다. 결국 이 문제는 미국 사회에서 공론화되어 분노를 들끓게 했으며, 1910년에 백인노예수출금지법이 통과되었다. 또한 비윤리적인 목적으로 여성을 미국의 다른 주로 이송하는 것 역시 법으로 금지되었다. 이 법의 주요 목적은 윤락 행위와 그에 따른 비도덕성에 적극 대처하는 것이었다. 백인노예수출금지법은 ‘[[맨 법]]’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이는 이 법안을 제안한 사람이 [[제임스 로버트 맨]]이라는 미국 하원의원이기하원의원 이기 때문이다.<ref>Cecil Adams, ''op. cit.''</ref>
 
=== 미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