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종 (조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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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숭과 추존 ===
[[1470년]](성종 1년), 1월 18일에 의경왕(懿敬王)으로 추숭하였다. 당시 [[조선 태조|태조 이성계]]의 아들이자 [[조선 태종|태종 이방원]]의 친형인 [[조선 정종|정종]]은 사후 시호가 없었고 종묘에도 배향되지 않았으므로 '정종(定宗)'이 아닌 '공정왕(恭靖王)'이라 불렀는데<ref>정종에게는 숙종 때 정식으로 묘호와 시호가 올려졌다.</ref>, 의경왕(懿敬王) 또한 그러하였다. 아내 수빈 한씨 또한 '[[왕대비]](王大妃)'가 아닌 '[[소혜왕후|인수왕비]](仁粹王妃)'로 진책되었다. 이때 그는 왕으로는 추숭되었으나 종묘에는 배향되지 않았다. 당시 그를 왕으로 추존한 뒤 황고로 부르느냐 황백고로 부르느냐를 놓고 논란이 발생하였다.
 
[[1475년]](성종 6년), [[1월 6일]]에 의경왕(懿敬王)을 의경대왕(懿敬大王)으로 추존하였다. 의정부(議政府)·육조(六曹)·춘추관(春秋館)에서 논의하여 올린 첫 시호는 선숙공현온문의경대왕(宣肅恭顯溫文懿敬大王)이었고 1월 21일(임술)에 최종적으로 예조(禮曹)에서 올린 시호가 회간선숙공현온문의경대왕(懷簡宣肅恭顯溫文懿敬大王)였다. 따라서 인수왕비(仁粹王妃) 또한 인수왕대비(仁粹王大妃)로 진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