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슬라우스 포스투무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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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3년 후녀디 야노시가 섭정 역할을 포기한 뒤부터 라디슬라우스는 자신의 외사촌이었던 [[슬로베니아]] 출신의 [[첼레 (슬로베니아)|첼레]] 백작인 울리크 2세(Ulrik II)에 의지했다. 울리크 2세는 [[오스트리아]]의 남작인 울리히 아이칭거(Ulrich Eytzinger)와의 권력 투쟁에서 승리하면서 라디슬라우스의 새로운 후견인 역할을 수행했다.
 
[[1456년]] [[7월 4일]]부터 [[7월 22일]]까지 [[오스만 제국]]의 술탄이었던 [[메흐메트 2세]]의 명령을 받은 오스만 제국 군대가 난도르페헤르바르(Nándorfehérvár, 현재의 [[세르비아]] [[베오그라드]])를 포위하면서 라디슬라우스는 헝가리 왕국을 떠나 [[빈]]으로 피신했다. 후녀디 야노시는 오스만 제국 군대를 물리쳤지만 2주일 만에 사망하고 만다.
 
헝가리 군대의 총사령관으로 임명된 울리크 2세는 라디슬라우스와 함께 헝가리로 귀환했지만 1456년 11월 9일 후녀디 야노시의 아들인 [[후녀디 라슬로]](Hunyadi László)에게 암살당하고 만다. 라디슬라우스는 후녀디 라슬로를 사면시켰지만 [[1457년]] 3월에 후녀디 라슬로를 처형했다. 이에 후녀디 가문과 후녀디 라슬로를 지지하던 세력들이 반란을 일으키면서 라디슬라우스는 빈으로 피신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