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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망일 = [[1953년]]? (51세)
| 사망지 = {{국기|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국적 = {{국기국기나라|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학력 = [[연세대학교|경성 연희전문학교]] 졸업 <br />[[소비에트 연방|소련]] [[모스크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동방노력자공산대학교]] 산업학과 [[졸업]]
| 직업 = [[정치가]]
[[강원도 (북)|강원도]] [[양양군|양양]]에서 출생하여 [[철원군 (남)|강원도 김화]]에서 성장한 그는 [[연세대학교|경성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했다. 1920년대 [[조선공산당]]에 입당하여 [[박헌영]], [[리승엽]], [[조봉암]], [[권오직]] 등과 함께 [[화요파]] 계열에서 [[공산주의]] 운동을 벌였고, [[모스크바]]의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같은 모스크바 유학생 출신인 [[김단야]]와 함께 조직 활동을 벌이다 투옥되는 등 일찍부터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동안 전향하여 [[친일파|친일]] 단체인 [[대화숙야마토주쿠]]에 가입했으며 강연 및 교사직 수행 등으로 친일 행위를 했다. 부유한 가정 환경과 친일 경력은 [[공산주의]] 운동가로서의 조일명을 두고두고 괴롭혔다. 후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간첩 혐의로 사형당한 뒤에도 [[리승엽]]과 함께 일제 때부터 전향했던 대표적인 변절자로 비난받았다.
 
[[1945년]] 광복 후 리승엽과 함께 [[박헌영]]의 재건파에 가담했고, 조선공산당 기관지인 [[해방일보]]의 편집장을 맡는 등 [[경성콤그룹]]을 대표하는 [[남로당]]의 핵심 인물로 활동했다. [[미군정]]이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이후 해방일보에 무기정간 조치를 내리자 월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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