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드 3세 체페슈: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잔글편집 요약 없음
44번째 줄:
[[1447년]] 12월 헝가리 [[보야르]]들의 섭정 [[후녀디 야노시]]가 블라드 2세에게 반란을 일으켰고 [[벌테니]] 근처 습지에서 그를 살해했다. 블라드 2세의 장자이자 후계자였던 [[왈라키아의 미르차 2세]]는 뜨거운 인두로 눈을 잃고 [[트르고비슈테]]에서 생매장을 당했다.
 
왈라키아를 헝가리가 차지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오스만은 왈라키아를 침공했고 어린 블라드 3세를 즉위시켰다. 그 통치는 훈냐디가후녀디가 왈라키아를 침공하면서 짧게 끝났고 그의 동맹이였던 [[더네슈티 가문]]의 [[왈라키아의 블라디슬라브 2세]]를 즉위시켰다.
 
블라드 3세는 그의 삼촌 [[몰다비아의 보그단 2세|보그단 2세]]가 있던 몰다비아로 달아났고 거기서 보호를 받았다. [[1451년]] 10월에 보그단이 암살되었고 블라드는 헝가리로 달아났다. 블라드의 뛰어난 사고방식과 그가 증오한 [[메흐메트 2세]]가 새로운 술탄으로 즉위하는 등의 일로, 후냐디는후녀디는 블라드와 화해했고 그를 자신의 조언자 역할을 맡겼다.
 
[[1453년]] 메흐메트 2세에 의한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함락]] 이후에, 오스만의 영향력은 [[카르파티아 산맥]] 너머 유럽 본토에 위협적으로 퍼졌고 [[1481년]]에 [[발칸반도발칸 반도]] 전역을 차지한다. 참고로 블라드의 3번의 통치는 전부 오스만 투르크의 발칸 침공으로 인해 끝나게 된다.
 
콘스탄티노플 함락 후 3년 뒤인 [[1456년]]에 오스만은 [[베오그라드]]를 포위하며 헝가리를 위협했다. 훈냐디는후녀디는 세르비아와 함께 반격에 나섰다. 그때 훈냐디는후녀디는 세르비아에 있어서 공성전을 피할 수 있었고, 블라드는 그의 부대를 왈라키아로 이끌어 그의 고향 땅을 되찾고 백병전에서 블라디슬라브 2세를 죽였다.
 
[[File:Theodor Aman - Vlad the Impaler and the Turkish Envoys.jpg|thumb|left|블라드 공과 터키인 사절. [[테오도르 아만]]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