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증동국여지승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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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전기에 중앙집권화가 강화되면서 조정은 각지의 정보를 반드시 제대로 파악해야 해서 각지의 연혁·토지·호구·성씨·인물·물산·문화유적 정보를 총람할 지리지 편찬 사업이 활발히 진행되었다. [[조선 세종|세종]] 시대에 이르러 본격화한 지리지 편찬은 《세종실록》지리지 부분에서 그 일면을 엿볼 수 있는데 세종조에 편찬된 지리지로서는 유일하게 「경상도지리지」만이 규장각에 소장되어 전하고 [[조선 세조|세조]] 때에 [[양성지]]가 주도하여 시작한 《팔도지리지》편찬이 [[조선 성종|성종]] 9년([[1478년]])에 완료되었으나 이것은「경상도속찬지리지」만이 규장각에 소장되어 전한다.
전 55권 25책으로 각 도의 지리를 수록하였는데 첫머리에 이행이 쓴 진전문(進箋文)과 [[서거정]] 등의 서문, [[김종직]] 등의 발문과 더불어 구본《동국여지승람》의 서문을 실었다. 이어 [[팔도총도]](八道總圖)라는 제목을 붙인 조선 전도와 함께 전국을 경도·[[한성부]]·[[개성부]]·경기도·충청도·경상도·전라도·황해도·강원도·함경도·평안도로 나누고 각 부와 도에 속한 지역 329개의 연혁과 [[관원]]·군명·성씨·[[풍속]]·[[형승]]·산천·[[토산]]·[[성곽]]·[[관방]]·[[봉수]]·[[누정]]·학교·역원·불우(佛宇)·묘사(廟社)·능침(陵寢)·[[고적]]·명환·인물의 사적(事蹟)과 시인(詩人)의 제영(題詠) 등을 실었다. 각 도 첫머리에는 도별로 지도를 넣었는데 대량으로 보급하려고 목판을 이용해 인쇄됐다. 지도는 모두 동서의 폭이 넓고 남북의 길이가 짧은 것이 특징이며, 북부 지역이 남부 지역보다 매우 작게 그려져 있어 변경 인식이 남부 지역 인식보다 낮았다는 사정을 보여준다. 《세종실록》지리지와 같은 기왕의 지리지와 크게 다른 점은 토지, 호구, 군사의 항목이 없는 대신 인물이나 제영의 비중을 늘렸다는 것인데 이것은 [[성리학]] 이념이 조선 사회에 점차 유포되면서 이에 충실했던 충신·효자·열녀의 행적을 전파하고 관리나 학자들이 쓴 시문을 알려 문화국으로서의 면모를 강조하려는 속셈이라고 혹자는 해석하기도 한다. 특히 《신증동국여지승람》편찬에 학문과 문화를 중시하는 사림들이 개입하면서 이 점은 더 강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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