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불 동맹: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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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불 동맹'''({{llang|fr|Alliance franco-russe}}, {{llang|ru|Франко-русский союз}}, Franco-Russian Alliance)은 [[프랑스 제3공화국]]과 [[러시아 제국]] 사이에 1892년부터 1917년까지 성립된 군사 동맹이다.<ref>[http://www.britannica.com/EBchecked/topic/172569/Dual-Alliance 2자 동맹], 2015년 11월 16일 확인</ref> [[1891년]]부터 양국의 협상이 공공연하게 되었고, 결국 [[1894년]] [[1월 4일]]에 체결되었다.
 
[[1882년]]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이탈리아 왕국 (1861년 ~ 1946년)|이탈리아 왕국]]이 결성한 [[삼국 동맹 (1882년)|삼국 동맹]]에 대항하기 위한 차원에서 형성되었으며 한 동맹국이 공격을 받으면 다른 나라가 군사적 지원을 하는 내용으로 정해졌다. 이 동맹은 [[영불 협상]], [[영러 협상]]과 함께 [[삼국 협상]]을 형성하는 계기가 된다.
 
== 배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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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맹 ==
[[파일:Cronstadt Paris Louvre DSC01386.JPG|섬네일|기념 깃발]]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이탈리아 왕국 (1861년 ~ 1946년)|이탈리아 왕국]] 등 중부 유럽, 남유럽 국가를 동서에서 협공하는 체제로 가상 적을 염두에 두고 [[삼국 동맹 (1882년)|삼국 동맹]](이후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이탈리아]]가 이탈하고 [[동유럽]]과 [[오스만 제국]] 등이 참가하는 가운데 동맹이 성립한다)이 결성되었다. 동맹이 결성될 때에는 러불 동맹과 [[삼국 동맹]]이 반드시 전쟁에서 대립하는 관계로 설정되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 유럽 왕실, 황실의 상례로 [[러시아 제국]] 황제 [[니콜라이 2세]]와 [[독일 제국]] 황제 [[빌헬름 2세]]는 인척 관계였다. [[청일 전쟁]] 이후 [[1895년]] [[삼국 간섭]] 때는 [[러시아]], [[프랑스]], [[독일]]이 그랬던 것처럼 각 나라마다의 국익에 따라 서로 손을 잡을 여지도 존재하고 있었다. 오히려 동맹 성립 초기에 러시아-프랑스 양국의 현안은 [[영국]]이었다. 러시아에게는 [[중앙아시아]], [[이란]] 등에서의 남하 정책을 방해하고 있었으며, 프랑스에 있어서는 자국의 ‘아프리카 횡단 정책’의 걸림돌로 작용했던 것이 ‘[[3C 정책]]’을 취했던 영국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일의 [[빌헬름 2세]]는 세계 정책(신항로 정책)을 내걸고 〈[[함대법]]〉의 제정 이후 영국과 전함 건조 경쟁에 돌입한 데다가 [[중동]] 진출(이른바 ‘[[3B 정책]]’)을 도모하면서 러시아와의 관계도 악화시켰다. 그 결과, 러불 동맹은 대(對)독일 동맹으로서의 성격을 강화했고, 이후의 영불 협상, 영국-러시아 협상과 결합하여 대 독일 포위망의 일각을 담당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