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막 (삼국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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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장막은 원소의 교만함을 꾸짖었다가 분노한 원소가 조조를 시켜 장막을 죽이려 했으나, 조조가 원소를 꾸짖어 그치게 하였고 장막과 조조는 더욱 신뢰하게 되었다. 그러나 원소에게서 쫓겨난 [[여포]](呂布)가 [[장양 (치숙)|장양]](張楊)에게 의탁하러 가는 길에 장막을 들러 교분을 맺었다. 원소는 분노하였고, 장막은 결국 조조가 원소를 위해 자신을 치리라고 여겨 두려워하였다.
[[흥평]](興平) 원년([[194년]]), 조조가 다시 서주목(徐州牧) [[도겸]](陶謙)을 치러 갔다. 장막은 연주(兗州)를 지켰으나, 동생 [[장초]](張超)의 모략으로 장초 · [[허사]](許汜) · [[왕해]](王楷) · [[진궁]](陳宮) 등과 함께 조조에게 모반하고, 여포를 맞이하여 연주목으로 삼고 조조와 싸웠다. 일은 초기에는 잘 되어 [[순욱]]이 지키는 견성, [[정욱 (조위)|정욱]]이 지키는 동아, 그리고 범 이 세 현을 제외한 모든 연주의 군현이 모두 호응했고, 조조와 여포가 복양(濮陽)에서 교전했으나 여포가 유리했다. 그러나 2년 간의 전투 끝에 결국 여포는 조조에게 졌고, 장막은 여포와 함께 [[유비]](劉備)를 찾아가 의탁하였다가, 원술에게 원군을 부탁하러 가는 도중에 부하들에게 살해당하였다.
==《삼국지연의》 속 장막==